[공복 김선생]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달걀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4. 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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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달걀 주고받게된 유래 &
평균 낙찰가 250억원 '파베르제 달걀'
보석세공인 피터 칼 파베르제가 제정러시아 황제를 위해 만든 '파베르제 달걀'./파베르제

지난주 일요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 축일입니다. 제가 살았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더 크게 축하하기도 하더군요.

◇ 부활절 달걀 주고받게 된 이유

부활절에 기독교인들은 예쁘게 색칠하거나 꾸민 달걀을 주고받습니다. 미국 등지에서는 ‘이스터 에그 헌트(Easter Egg Hunt)’라고 해서 숨겨놓은 달걀이나 달걀 모양 초콜릿을 아이들이 찾는 행사가 백악관을 포함 곳곳에서 열리기도 하죠.

부활절 달걀이 언제 어떻게 시작된 풍습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달걀은 고대부터 세계 대부분의 문화와 종교에서 생명과 탄생, 부활의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종교학자는 부활절 달걀 풍습이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됐다고 추정합니다.

부활절 달걀./조선일보DB

과거 이 지역에 있었던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매년 춘분(春分)을 새해의 첫날로 여기며 축하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이 믿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선한 봄이 악한 겨울을 물리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점으로 보았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새해를 축하하며 달걀을 주고받았는데, 같은 지역에 함께 살던 기독교인들이 이 풍습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도들에게 달걀은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병아리가 태어난다는 점에서 돌무덤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적합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러시아 등 동방교회로 전해지고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까지 확산되면서 기독교 세계 전체의 부활절 풍습으로 정착했습니다.

알록달록하게 장식한 부활절 달걀./조선일보DB

페르시아 사람들은 알록달록하게 달걀을 칠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의미하는 붉은색으로 달걀을 칠했고, 점차 다양한 색깔과 무늬로 화려하게 꾸민 부활절 달걀이 등장했습니다. 실제 달걀이 아닌 달걀 모양으로 만든 장식품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달걀 장식품의 궁극이 뒤에 소개할 ‘파베르제 달걀(Faberge Egg)’입니다.

부활절 달걀 풍습이 사순절(四旬節) 때문에 생겨났다고 하는 종교학자들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전 40일을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사순절로 기념합니다. 과거 사순절에는 고기·달걀·유제품을 일절 금했습니다. 하지만 암탉은 사순절과 관계없이 계속 달걀을 생산했고, 먹지 않고 쌓인 달걀을 부활절에 먹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요즘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는 부활절에 달걀보다 초콜릿을 더 먹는 추세입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처음 달걀 모양 초콜릿이 개발됐고, 달걀 형태 용기에 담긴 초콜릿 등 다양한 제품이 판매됩니다. 부활절 기간 초콜릿과 사탕 판매량은 미국에서만 무려 19억달러(약 2조3000억원)어치로, 핼러윈(20억달러)에 이어 둘째로 많습니다.

◇ 평균 낙찰가 250억원 ‘파베르제 달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달걀은 무엇일까요? 바로 ‘파베르제 달걀(Faberge Egg)’입니다. 경매 평균 낙찰 가격이 250억 원이니,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달걀인 건 확실하죠. 사실 진짜 달걀은 아닙니다. 금과 은, 각종 보석으로 만든 고급 장식품입니다. 제정 러시아 시절 보석세공인 피터 칼 파베르제가 러시아 황실을 위해 만든 부활절 달걀입니다.

1885년 부활절을 앞두고 알렉산드르 3세는 사랑하는 아내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에게 결혼 20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차르(황제)는 파베르제에게 달걀 제작을 의뢰합니다. 이것이 최초의 파베르제 달걀인 ‘암탉 달걀(Hen Egg)’입니다. 황후는 파베르제가 만든 달걀을 받고 너무나 기뻐했다고 합니다.

크게 만족한 황제는 매년 부활절 달걀 제작을 파베르제에게 맡겼습니다. 황제는 파베르제를 ‘황실 보석세공인’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달걀 제작에 대한 전권을 맡겼습니다. 파베르제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해 만들어도 좋다고 허락한 거죠. 단, 달걀 안에 ‘놀라움(surprise)’ 즉 깜짝 놀라게 하는 어떤 요소 내지는 장치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죠.

알렉산드르 3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의 뒤를 이은 니콜라이 2세가 1895년부터 매년 부활절 어머니 태후 표도로브나와 아내를 위해 각각 하나씩, 모두 2개의 달걀을 주문했지요. 이렇게 달걀 장식품은 매년 부활절 만들어져 황실 가족과 귀족에게 선물로 전해졌습니다.

파베르제는 본래 프랑스 출신이지만 신교도 탄압을 피해 독일로 다시 러시아로 이주한 보석세공인 가문입니다. 194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피터 칼 파베르제는 독일에서 교육 받고 금세공을 익힌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아버지 공방에서 보석 세공 기술을 수련했습니다. 1870년 아버지 뒤를 이어 가업을 이으며 금과 보석 장식품을 만들었고, 곧 러시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최고의 장식미술 장인으로 이름을 날립니다. 전통적인 디자인을 거부하고 파격적고 환상적인 작품을 창조했는데, 대표작이 바로 부활절 달걀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창조적인데다 황제로부터 든든한 후원까지 받게 된 파베르제는 최고의 달걀 장식품을 만들어 냅니다. 달걀 내부에 기계식 또는 시계처럼 움직이는 장치를 집어 넣거나 큰 알이 작은 알을 품고 그 속에 또다른 장식품을 품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미술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전성기 파베르제 공방은 700명이 넘는 예술가와 기술자가 일하는 세계 최대 공방으로 러시아와 유럽 각국 왕실, 귀족 가문에 공예품을 공급했습니다. 공방에서 생산된 공예품은 달걀 외에도 10만 점이 넘는다고 알려졌죠.

파베르제 달걀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면서 생산이 중단됩니다. 파베르제 달걀은 69개가 생산됐는데, 이중 57개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몇 개가 더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혁명 이후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죠. 차르 황실을 무너뜨린 공산정권이 외화 획득을 위해 파베르제 달걀을 공개 매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확인되는 57개는 모스크바 크렘린궁(10개),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베르제 미술관(9), 미국 버니지아 미술관(5개), 영국 왕실 컬렉션(3개), 개인 등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12개의 파베르제 달걀이 언제 어디서 나올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재 확인된 파베르제 달걀 중 마지막 57번째는 2014년 미국에서 발견됐습니다. 한 고철업자가 단순한 금 세공물로 생각하고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달걀 모양 골동품이 파베르제 달걀로 판명난거죠.

골동업자는 처음엔 이 달걀을 녹여서 팔면 500달러 정도 수익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달걀 안에 장식된 시계 뒤에 적힌 ‘바쉐론 콘스탄틴’이란 단어와 ‘달걀’을 검색해보다 진가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검색창에 ‘러시아 황제 3세의 파베르제 달걀’에 대한 신문 기사가 떴고, 이를 본 고철업자는 전문가를 찾아가 정식으로 감정을 받았습니다.

이 파베르제 달걀은 영국 보석업체 와스키를 통해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에게 팔렸습니다. 판매가도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파베르제 달걀의 경매 낙찰가가 평균 250억원이 넘는다니 300억원대에 팔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부활절 달걀 사냥이 이렇게 큰 돈이 될 수도 있네요. 벼룩시장에서 낡은 달걀이 보이면 허투루 지나치지 않아야겠습니다. 참고로 파베르제 가문은 러시아 혁명 이후 스위스로 탈출했고, 2007년 파베르제를 최상의 보석 제품을 선보이는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로 부활시켰습니다. 대표 제품인 파베르제 달걀을 모티프로 한 목걸이, 팔찌, 반지 등 다양한 보석 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아직 공식 판매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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