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구까지만 배달" 길 막힌 택배 노동자의 '고육책'

정대연·고희진 기자 2021. 4. 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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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택배차 금지' 아파트단지 앞서 "개인배송 중단" 밝혀
주민들 "손수레·저상차량 써라" 기사들 "시간 안 된다" 대립
전국 '지상 출입 금지' 최소 179곳..현실적 타협점 찾아야

[경향신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 기사들이 8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일반 택배차량과 저상 택배차량을 비교해 보이고 있다. 5000가구 규모인 이 아파트가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도로 이용을 막자, 택배노조는 이 아파트에서 개인별 배송을 중단하고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8년 4월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택배 배송을 두고 택배기사와 입주민 간 갈등이 벌어졌다. 아파트 측이 안전 등 이유로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하자 택배기사들이 단지 입구에 택배물을 쌓아두고 직접 찾아가라고 한 것이다. 3년이 지났지만 전국 수백개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택배노조 조사 결과 지상 출입이 금지된 아파트는 전국에 최소 179곳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 소속 기사들이 8일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14일부터 이 아파트를 개인별 배송 불가 아파트로 지정하고 단지 입구까지만 배송하겠다”고 밝혔다. 택배 물품을 아파트 입구에 놓을 테니 주민들이 알아서 찾아가라는 것이다.

53동, 5000가구 규모인 이 단지는 허가를 받은 일부 차량을 제외한 차량은 지하를 통해 이동해야 하는 지상공원형 아파트다. 어린이 안전사고, 보도블록 훼손 등 이유로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금지했다.

문제는 이 아파트 지하 출입구 높이가 2.3m 정도인데 택배차량 높이는 2.5~2.7m라는 점이다. 3년 전 다산신도시 택배 배송 갈등 이후 정부는 2019년 1월 신축 지상공원형 아파트는 지하 출입구 높이를 2.7m 이상 짓도록 했지만 그 전에 허가를 받은 곳은 적용되지 않는다.

아파트 측은 1년 전부터 택배사에 지상 진입 금지 방침을 알렸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택배차량을 단지 입구에 세워두고 손수레를 이용해 단지를 돌며 배송하거나 차량 높이가 낮은 저상탑차로 바꿔 지하 통로로 배송하라는 것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기존에 지상으로 다니던 차량도 무조건 지하로 다니라고 하는 입장”이라며 “(택배기사들이) 최근 며칠 동안 손수레를 이용해 잘 배송하다가 오늘 갑자기 개인별 배송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했다.

택배노조는 택배기사의 과로를 부채질하는 ‘갑질’이라고 반발한다. 손수레를 사용하면 노동시간이 3배나 늘고, 눈비가 와 택배물이 손상되면 택배기사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상차량의 경우 적재 가능한 물량이 일반차량보다 절반 가까이 적어 택배터미널을 더 오가야 하는데, 이는 노동시간 증가로 이어진다. 저상차량은 화물칸 높이가 127㎝에 불과하다. 허리를 숙이고 작업하기 때문에 근골격계질환도 증가할 수 있다. 저상차량으로 개조하는 비용 수백만원도 택배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

이 아파트 담당 택배기사의 동료 A씨는 “물량이 가장 많은 지난 6일 이곳 담당기사는 동료 2명의 도움을 받고도 밤 9시가 넘어 배송을 마쳤다”며 “하루에 4만보를 걸었다고 한다”고 했다.

일부 아파트는 노인들이 단지 내에서 배송하는 ‘실버택배’나 단지 내 무인택배함 등을 활용해 갈등을 완화하기도 했지만 비용 때문에 널리 확산되지는 않았다. 강민욱 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차량 지상 출입을 허용하되 안전속도 절대 준수, 차량 안전장치 설치 등 주민 안전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는 방안도 있다”며 “지금까지는 개별 기사가 주민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부터 조직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정대연·고희진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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