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알래스카와 두 개의 신축년 / 정인환

정인환 2021. 4. 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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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도 베이징 둥청구에 둥자오민샹 후퉁이 있다.

중국 쪽이 공개한 1시간10분 남짓한 현장 화면을 보면, 이날 양 정치국원은 통역을 포함해 모두 20분 동안이나 머리발언을 이어갔다.

신장위구르(웨이우얼)·시짱(티베트)·홍콩·대만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중국 쪽에선 "떼어낼 수 없는 중국의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순전히 중국의 내부 문제"이므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자 "국제관계의 원칙과 국제법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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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18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 미국 쪽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맨 오른쪽)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오른쪽 둘째), 중국 쪽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맨 왼쪽)과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왼쪽 둘째)이 참석했다. 앵커리지/AP 연합뉴스

정인환ㅣ베이징 특파원

중국 수도 베이징 둥청구에 둥자오민샹 후퉁이 있다. 천안문 광장 동로에서 시작해 숭문문 큰길까지 1552m가 이어진다. 베이징시 문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 거리는 한때 공사관 거리로 불렸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이후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 열강이 이곳에 공사관을 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의 흔적이 서양식 건물로 남아 있다.

1900년 6월 ‘부청멸양’(청나라를 도와 서양을 박멸하자)을 기치로 내건 의화단이 베이징에 입성했다. 서구 열강은 의화단 진압을 요구했지만, 청나라는 그해 6월21일 되레 열강에 선전포고를 하고 둥자오민샹을 봉쇄했다. 서구 열강 8개국이 연합군을 구성해 베이징을 장악한 것은 그해 8월14일이다.

‘신축조약’, 베이징 의정서로도 불린다. 의화단 사건을 진압한 열강은 1901년 9월7일 둥자오민샹에 자리한 스페인 공사관에서 12개조에 이르는 항복 조약을 강요했다. 조약에 따라 은 4억5천만량이란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 청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둥자오민샹은 치외법권 지대가 됐다. 중국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다.

두개의 갑자를 지나 다시 신축년이다. 중국은 더 이상 불평등조약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됐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3월18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한 발언은 달라진 중국이 세계를 향해 내놓은 ‘존재 선언’이었다.

“세계 절대다수 국가는 미국의 가치가 국제적 가치이며, 미국이 말하는 게 국제 여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소수 국가의 규칙이 국제사회의 규칙인 것도 아니다. 미국에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있고, 중국에는 중국식 민주주의가 있다.”

중국 쪽이 공개한 1시간10분 남짓한 현장 화면을 보면, 이날 양 정치국원은 통역을 포함해 모두 20분 동안이나 머리발언을 이어갔다. 미국 쪽의 비판에 대한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지난 4년여 미-중 갈등 격화 속에 중국이 벼려온 외교적 원칙을 총정리한 발언으로 보였다.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신장위구르(웨이우얼)·시짱(티베트)·홍콩·대만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중국 쪽에선 “떼어낼 수 없는 중국의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순전히 중국의 내부 문제”이므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자 “국제관계의 원칙과 국제법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주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중국 체제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면, “중국 특색 사회주의 제도는 중국 내부 상황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중국 발전의 ‘비밀번호’와 같다”고 반응한다. 개혁개방 40여년의 성과가 이를 증명한다는 게다. “어떤 개인이나 국가도 더 나은 삶을 염원하는 중국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른바 ‘발전이익’이다. 양 정치국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미국은 인권 문제를 비롯해 각 방면에서 산적한 국내 문제 해결에나 신경을 써야지,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 미국은 더 이상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국을 향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중국인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저 높은 곳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이제 중국도 미국과 ‘대등한 존재’다. 중국 내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오늘의 중국은 1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달라진 중국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세계의 고민이 깊어만 간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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