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4월의 과학

한겨레 2021. 4.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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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 세상이 안전해지나”라는 물음이다.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렇게 큰 배가 속절없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희생을 치르고 나서 7년이나 흘렀지만 우리가 더 안전해졌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치형ㅣ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단원고 2학년 8반 장준형군 아빠 장훈씨는 과학을 좋아한다. “과학은 사회 발전의 촉매제”라고 믿고, 한국에도 아이돌급 과학자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나와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유튜브에서 과학 콘텐츠를 찾아서 볼 때도 많다. 최근에는 인지심리학 강의를 재미있게 들었다. 카오스재단에서 제작하는 과학 강연이나 책 소개도 보는데, 내가 그 채널에서 한 짧은 인터뷰 영상을 보고는 말을 좀 재미있게 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준형이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과학책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다. 열다섯살 때 처음 읽고 좋아했고, 2년 전쯤 다시 찾아 읽었다. 어렸을 때는 우주를 설명하는 과학책으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이게 우주에 관한 책인가 철학에 관한 책인가,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고 평했다. 상대성 이론에 대한 설명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코스모스>를 읽은 후에 영화 <인터스텔라>도 과학적인 배경을 이해해가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도 재미있게 읽었고, 과학의 발전을 사회의 구조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방식이 좋았다.

어떻게 과학을 취미로 삼게 된 것인지 물었더니 실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배가 침몰했을 때부터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까 취미가 아니라 “뭐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뭐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과학을 가까이한다는 얘기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쓴 문명사 <총, 균, 쇠>를 읽다가도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조직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고 느꼈다. “내가 신이 되고 싶은가 봐요. 다 알고 싶어지는 것 같아.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세월호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한 그는 “이것 때문에 이랬다고 설명해줄 수 있는 게 과학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과학을 좋아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아쉬운 마음도 있다. 특히 2017년 이맘때 세월호가 인양된 직후에는 실망이 컸다. “우리한테는 가슴 아픈 세월호지만, 과학자들 입장에서는 연구대상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는 과학자들이 인양된 세월호에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을지 설명했다. 3년 동안 가라앉았던 배의 물리적 변화를 연구하고, 그사이 배 안에 서식한 생물을 연구하고, 조류가 배 안에 침전물을 어떻게 쌓았는지 연구하고, 또 시신이 바닷물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신원 확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연구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정부와 과학계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융합 연구의 훌륭한 대상이 목포신항에서 과학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당시에 교수님들이 별로 안 왔잖아요”라고 말하는 그는, 세월호가 과학 지식이 되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끝내 아쉽다.

준형이 아빠에게는 과학의 발전에 대한 큰 의문도 하나 있다.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 세상이 안전해지나”라는 물음이다.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렇게 큰 배가 속절없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희생을 치르고 나서 7년이나 흘렀지만 우리가 더 안전해졌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사 당시 느낀 괴리, “정작 필요할 때는 아무것도 없고 딴것들은 되게 발전해 있는” 상황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자들의 얘기를 듣고 같이 고민하고 싶은 ‘목마름’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과학자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과학자들과 세월호 얘기, 안전한 세상에 대한 얘기를 진솔하게 나눠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준형이 아빠는 4월이 ‘과학의 달’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4월 그러면 아픈 달” 하면서 넘어가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내가 4월은 과학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달이라고 하자, “과학의 달에 우리 애들은 왜 하늘의 별이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4월이 과학의 달이라면, 4월에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해야 하는 과학은 어떤 과학일까. 4월의 과학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준형이 아빠는 과학의 달 4월에 과학이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한 방법일 수는 없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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