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천장'이라는 헤드라인이 불러일으킨 논란

아카데미 아시안 수상 후보를 축하하는 기사 헤드라인에 ‘대나무 천장’이란 용어가 쓰임

‘대나무 천장’은 아시안에 대한 농담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음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적절치 않은 표현이었다는 의견이 대다수

올해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미나리’의 스티브 연이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로 올라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 연기상 수상 후보라는 기록을 남겼다. 또한 한국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후보로 오르는 등 많은 아시안들이 아카데미 수상 후보로 올라 아시안들에게는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사의 헤드라인에 ‘대나무 천장’이란 표현이 사용됐는데 온라인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는 ‘드디어 여러 분야에서 아시안 배우들이 대나무 천장을 산산이 부수고 있다(Diverse Field Sees Asian Actors Shatter a Bamboo Ceiling)라는 헤드라인을 ‘드디어 여러 분야에서 아시안 배우들이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Diverse Field Sees Asian Actors Finally Break Through)’로 변경했다.

‘대나무 천장’이라는 명사구는 2005년 제인 현이 한 논문에서 아시안들이 전문직에서 상위직에 올라가는 어려움을 페미니즘에서의 ‘유리 천장’에 빗대어 사용한 것에서 유래됐다. 용어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시국에서 대나무 천장이라는 헤드라인이 많은 아시안들의 심경을 불편하게 했다.

현재 아시안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모범 소수자(Model minority)’와 ‘대나무 천장’을 들 수 있다. ‘모범 소수자’는 아시안을 성공한 소수 인종을 일컫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일부 성공한 아시안을 일반화하면서 많은 아시안들이 겪고 있는 차별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백인 주류사회의 틀에서 만들어진 ‘모범 소수자’는 아시안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는데 일조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와 차별을 축소하거나 묵과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근래에는 더 많은 받고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아시안이 겪는 차별을 대변하는 용어인 ‘대나무 천장’도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도 너희는 한계가 있다는 아시안들에 대한 농담으로 다루어지곤 한다는 점에서 ‘모델 마이너리티’와 일맥상통하는 용어가 됐다. 한국계 미국인인 박 에스더(‘The Fake Podcast’ 운영)는 트위터상으로 “대나무 천장? 많은 종류의 쌀 밭에서 아시안 배우들이 쿵후로 대나무 천장을 흔들고 있다로 쓰지 그래?”란 포스트를 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쿵후 바이러스'로 말하면서 아시안에 대한 차별을 조장한 것을 빗대어 대나무 천장에 대한 용어 사용을 비난한 것이다. 에스더의 트위터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대나무 천장’ 헤드라인에 대한 비난을 트위터에서 이어갔다.

NBC TMWR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박 에스더는 "다른 시국에 대나무 천장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적절치 않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기사를 쓴 레베카 선은 "대나무 천장이 직장 내에서의 아시안에 대한 차별을 뜻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근래에는 안티 아시안 인종주의자들이 종종 쓰는 대나무 천장과 관련된 농담과 결부돼  대다수 아시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라고 밝혔다.

대나무 천장에 관한 이러한 논쟁은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사회자 크리스 록이 무대에 오른 3명의 아시안계 아이들을 ‘프리이스 워터하우스(아카데미 수상작에 대한 투표 집계를 담당하는 국제 회계/컨설팅 법인) 회계사로 소개하는 농담으로 아시안들을 씁쓸하게 했던 당시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수학에 뛰어나면서 일을 열심히 한다는 고정관념을 이용한 농담이다. 흑인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흑인 사회자가 아시안계를 비하하는 농담을 함으로써 논란이 있었다. 그에 대한  비판에는 미국에는 흑인과 백인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나무 천장’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른 해보다 더 많은 수의 아시안 수상 후보들을 축하하기 위한 기사에서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쓰인 단어라고 본다면 직장 내에서 아시안들이 겪는 차별과 장벽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용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팬데믹 이후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에서 대나무 천장을 소재로 농담을 즐기는 안티 아시안들의 존재 때문에 아시안들에게는 오히려 불쾌한 용어가 됐다. 더군다나 유리천장은 유리를 통해 유리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으나, 대나무 천장은 천장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 = 정수연 글로벌 리포터 sooyoun0594@gmail.com

■ 필자 소개

미국 The University of Iowa, Information systems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