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억류 석달째..'한국케미호' 선장 언제쯤 석방되나

길윤형 2021. 4. 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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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략적 갈등에 엮인 것이라면 장기화될 수도
외교부 "좋은 소식이 나오길 국민과 함께 기대"
압바스 아락치(오른쪽) 이란 외무부 차관이 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한 첫 당사국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인 그랜드 호텔 앞에 도착하고 있다. 빈/AP 연합뉴스

“우리가 할 수 있는 협상은 다 했습니다. 이제 기다려 보는 수밖에요.”

지난 5일 저녁,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외교부 당국자의 목소리엔 깊은 피로감과 묘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지난 1월 이란에 억류된 ‘한국케미호’ 선장과 선박의 석방 문제와 관련해 “오늘 밤에도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를 당장 공개할 순 없었다. 하루 밤 사이에도 몇번이고 뒤바뀌는 예측할 수 없는 협상 태도 때문에 이란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1월4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페르시아만에서 ‘해양 오염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한국케미호를 억류한 뒤 선원과 선박의 조기 석방을 위한 끈질긴 협상을 벌여왔다. 나포 직후인 10~13일 최종건 제1차관이 이란을 방문했고, 그 덕인지 이란 정부는 2월2일 이란 당국은 20명의 선원 중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을 석방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정의용 외교장관이 2월24일 모함마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과 전화회담을 통해 “우리 선장 및 선박의 억류를 조속히 해제할 것”을 촉구하는 등 이란을 상대로 한 교섭을 이어왔다.

하지만, 철전지 ‘원수’인 미국, ‘숙적’인 이스라엘, 중동의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처절한 외교전을 벌여 온 이란의 태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제재’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5월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은 ‘이란 핵협정’(JCPOA)을 일방 파기하고, 이란에게 부과해왔던 여러 경제제재를 부활했다. 이 와중에 한국이 보관하고 있던 무려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에 이르는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이 ‘동결’되고 만다. 이란은 겉으로는 선박 억류와 동결 자금은 무관하다고 말하면서도 “70억달러는 이란인들의 목숨이 걸린 돈”이라고 주장하며 두 문제를 사실상 연계해왔다. 자리프 외교장관 역시 24일 정의용 장관에게 “동결 원화자금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청하며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미, 한-이란 간의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정확히 알긴 힘들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한-이란이 동결 자금 가운데 10억달러를 반환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음을 인정했다. 그러자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10억달러를 이란에 반납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자산은 미국과 협의를 한 뒤에만 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한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속절 없이 40여일이 지났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과 회담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아락치 이란 외교차관. 외교부 제공

외교부의 기대와 달리 5일 밤 선장의 ‘석방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케미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조사가 선장과 선박을 돕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며 “외무부는 선박에 대한 의견을 사법부에 제출했으며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쳤다. 선장의 ‘즉각 석방’을 결정하지 않고, 최종 판단을 이란 사법부의 몫으로 돌린 것이다.

이 발표가 이뤄진 이튿날인 6일 이란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이란 핵협정 복귀를 향한 첫 당사국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끝낸 뒤 압바스 아락치 차관은 취재진과 만나 미국이 ‘이란이 20% 농축 우라늄 생산을 중단하면 그 대가로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 10억달러를 풀어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했음을 공개했다. 이란은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당일 농축도 20%의 우라늄(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의 생산을 재개한 바 있다. 이는 이란 핵협정의 틀을 벗어는 ‘도발 행위’였다. 미국이 이를 막기 위해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 자산을 대 이란 ‘협상 카드’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락치 차관은 미국의 제안을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다. 그러자 프라이스 대변인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6일 첫 회의는 “(이란 핵합정의 복원으로 가는) 과정의 시작이다. 우리는 앞에 매우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란의 치열한 줄다리기와 별개로 한국에게 중요한 문제는 선장이 언제 석방될지이다. 이란의 발표에 따르면, 이란 법원이 선장의 석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판단이 언제 어떻게 내려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이란이 자신들의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장을 억류해 두는 게 필요하다는 선택을 한 것이라면, 억류 사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이란은 미국이 먼저 제재를 해제해야만 ‘핵협정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탄도미사일 개발 제한’ 등 자신들이 원하는 요소를 협정에 추가하려 벼르고 있다. 양쪽의 의견이 너무 달라 쉽게 결론이 도출되기 힘든 상황이다.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이 말했듯 이란 핵협정 복귀로 가는 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에 대해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조만간 있을 수 있는 이란 사법 당국의 입장 발표 내지는 통보가 조기 억류 해제 등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기를 국민과 함께 기대한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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