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이 견디고 있다

나경희 기자 2021. 4. 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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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할 때면 심박수가 120까지 올라간다.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힐끗 손목시계를 봤다가 치솟은 심박수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후 2시까지 마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어느새 2시30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보고 있으면 심박수는 13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심박수가 100, 110, 120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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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제주도당 제공

마감을 할 때면 심박수가 120까지 올라간다.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힐끗 손목시계를 봤다가 치솟은 심박수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후 2시까지 마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어느새 2시30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보고 있으면 심박수는 13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 순간 심장은 고막에 붙어 있는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뭐라도 써야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는 두 손은 자판 위에서 서로를 마른행주처럼 짜대고 있다.

제704호 마감은 달랐다. ‘퀴어 정치인’ 김기홍씨를 추모하는 부고 기사를 쓰면서 심박수가 좀체 올라가지 않았다. 기사가 술술 나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슬펐다. 축 처졌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늦게 쓴다는 건 언제나 미안하고 슬픈 일이지만 김기홍씨의 죽음은 특히 더 그랬다. 심각한 문제라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 또는 저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목받지 못한 죽음이었다. 기사 수정을 거듭하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쓸쓸해지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겨우 기사를 넘긴 뒤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눈을 감는 순간 손목시계가 징징 울렸다. 선배가 보낸 메시지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 ‘[1보] 변희수 전 하사 청주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속보였다. ‘엉?’과 ‘뭐?’ 사이의, ‘음’과 비슷한 발음이 터져 나오려다 말았다. 어떡하지, 기사를 막 넘겼는데. 이 소식까지 넣어야 할 거 같은데. 그 생각을 하면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박수가 100, 110, 120까지 올랐다. 앉아서 손목시계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심박수가 오르지, 이건 슬픔이 아닌 걸까. 그렇다면 분노일까. 절망일까.

다음 날 기사 말미에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한 문단을 덧붙였다. 김기홍씨와 함께 활동했던 동료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차별금지법 같은 정책에 초점을 맞춰주시면 안 될까요. 부고 기사가 나가면 아무래도 지금… 어디선가 기사를 볼 트랜스젠더들이 안 좋은 자극을 받을까 봐서요.” 심장이 고막에 붙은 것처럼 쿵쿵거렸다. 마음껏 애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2021년 3월에도 있었다고, 그들이 곳곳에서 견디고 있었다고 기록해둔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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