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대봉 양희지 묘' 시 지정문화재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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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는 '대봉 양희지 묘'를 울산광역시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대봉 양희지 묘'는 조선초기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인 대봉 양희지(大峰 楊熙止, 1439~1504)의 묘소이다.
시 관계자는 "대봉 양희지 묘소는 조선 초기 울산의 모습과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며 "지정예고 기간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울산 역사와 문화유산 정책 발전의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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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울산시는 ‘대봉 양희지 묘’를 울산광역시지정문화재(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8일 밝혔다.
‘대봉 양희지 묘’는 조선초기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인 대봉 양희지(大峰 楊熙止, 1439~1504)의 묘소이다. 봉분, 석인상, 상석, 비석으로 구성된다.
양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울산군 ‘우거(寓居)’조에 실려 있는 울산 관련 인물이다.
1474년(성종 5) 문과(文科)에 합격한 이후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형조판서(刑曹判書),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했다.
그는 학성이씨 이종근(이예의 아들)의 사위로, 1504년(연산군 10년) 사망 후 울산에 장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양희지의 가계와 행적은 조선 초기 남귀여가(男歸女家 : 남자가 신부가 될 여자의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른 뒤 처가에서 살다가 본가로 돌아감)의 일반적인 풍습을 확인해주는 좋은 역사적 자료이다.
묘소는 사망한 당대에 조성해 관리된 것으로 보이는데 봉분 앞 비석은 임진왜란 중에 멸실돼 후손에 의해 1830년에 다시 세워졌다.
이때 비석의 글씨를 학성 이씨 이근오(李覲吾, 1760~1834, 울산 최초의 문과 급제자)가 쓰는 등 울산과의 인연도 깊다.
시 관계자는 “대봉 양희지 묘소는 조선 초기 울산의 모습과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며 “지정예고 기간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울산 역사와 문화유산 정책 발전의 지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you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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