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문학잡지

한소범 2021. 4. 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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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문학계를 휩쓴 표절 논란은 곧 문학계 전반의 쇄신으로 이어졌다. 특히 낡은 관행을 고수해온 주요 출판사 문예지들이 가장 먼저 변화를 꾀했다. 이른바 ‘문단 권력’으로 지목된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이 일괄 교체됐고 ‘문학3’, ‘릿터’, ‘악스트’처럼 ‘젊은 잡지’를 표방하는 문예지들이 새로 탄생했다.

SNS에는 1966년 창간된 문학잡지 창작과비평을 읽었음을 인증하는 게시글이 가득하다. 인스타그램 캡처

이후 6년, 문학잡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문예지는 더 이상 고루하고 근엄한 책의 상징이 아니다. 최신 담론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고 유행을 적극 반영하는 트렌드의 중심에 문예지가 있다.

1966년 창간된 전통의 문학잡지 창작과비평은 종이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2019년부터 창작과비평을 함께 읽는 온라인 독서모임 ‘클럽 창작과비평’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최근 3기 모집에는 1,500명이 신청하며 누적 신청자만 5,500명을 돌파했다.

창비는 문예지 '창작과비평'을 함께 읽는 온라인독서모임을 운영 중이다

이 모임에서 출판사는 미션을 설정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등 완독까지의 과정을 함께한다. 논문 및 칼럼, 평론, 좌담, 서평이 실린 500쪽 내외의 묵직한 잡지를 끝까지 다 읽은 ‘클러버’에게는 수료증을 발급해준다. 특히 잡지에 수록된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다짐’이라는 글과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제출하는 환경보호 미션을 연계하며 문예지 읽기가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문예지가 현실에도 유용하다는 것을 체험하게끔 하려는 의도다. 덕분에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2030세대가 참여자의 90%에 달할 만큼 ‘젊은 잡지’로의 환골탈태가 가능해졌다.

문예지 ‘악스트’는 최근 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와 함께 차세대 예술가 8인의 작품집 ‘AnA’를 출간하고 관련 홍보 영상도 제작했다. 유튜브 캡처

외연 확장을 위해 콜라보도 적극 환영이다. 2015년 창간된 출판사 은행나무의 문예지 ‘악스트’는 최근 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와 함께 차세대 예술가 8인의 작품집 ‘AnA’를 출간했다. 아르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1년 과정을 결산하는 작품집으로, 작가들의 신작과 인터뷰, 수필, 일러스트, 평론, 리뷰 등을 다양하게 싣기 위해 이례적으로 문학잡지와 아카데미가 손을 잡았다. 디자인과 제목, 목차 구성 등의 요소에서 AxT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홍보를 위해 관련 영상도 만들었다.

민음사가 2016년 창간한 문학잡지 '릿터'. 왼쪽부터 각각 '유튜브 내러티브', '크리스마스의 악몽', '케이팝 라이프'를 주제로 삼은 호의 표지.

문학잡지는 무조건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만을 다뤄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자유롭다. 2016년 민음사가 40여 년간 발행해오던 ‘세계의 문학’을 폐간하고 새롭게 만든 문예지 ‘릿터’는 표지와 주제 모두 한껏 ‘힙’하다. 최근 29호를 발행한 릿터가 그간 각 호의 주제로 삼아온 것들은 ‘유튜브 내러티브’, ‘크리스마스의 악몽’. ‘노키즈’, ‘출퇴근길’, ‘케이팝 라이프’ 등이다. 매 호마다 이 주제를 다룬 짧은 소설, 비평, 칼럼이 실린다. 릿터의 주요 구독자 역시 2030 세대인 만큼 이들의 관심사를 적극 반영한 결과다.

자음과모음은 계간평을 영상을 통해 중계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자음과모음 유튜브 캡처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은 아예 매 호마다 다른 객원 편집자를 모셔 잡지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다. ‘게스트에디터’라 불리는 이들 객원 편집자들이 선택한 주제로 문예지를 만든다. 해양환경 보호 활동을 펼치는 단체 오션카인드, 영화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등이 객원 편집자로 나서 자신들만의 색을 담은 잡지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문예지에 실리는 계간평을 영상으로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지난해 10월 창간된 에픽, 올 2월 창간된 문학인, 3월 창간된 문학수첩

이 같은 바람에 힘입어 새로운 문학잡지 창간도 줄 잇고 있다. 지난해 10월 다산북스가 새로운 문학계간지 ‘에픽’을 창간한 데 이어 올 2월에는 소명출판사가 계간 문예지 ‘문학인’을, 3월에는 문학수첩이 반연간 문예지 ‘문학수첩’을 창간했다. ‘문학수첩’의 경우 지난해 겨울까지 펴내오던 시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을 소설과 산문 중심의 문예지로 재창간한 것이다. 강봉자 문학수첩 발행인은 "수많은 문학잡지의 홍수에도 문학인들은 여전히 지면으로 목말라한다"며 "이 작은 지면으로 조금이나마 목을 축일 수 있다면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창간의 의의를 밝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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