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봉급 턴 컬링연맹 직원들
엊그제(6일) 컬링 남자 국가대표팀이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강팀 캐나다를 10대9로 물리쳤다. 현 대표팀은 아르바이트와 생활체육 강사로 지내던 아마추어 선수들로 급조된 팀이다. 그런 팀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내로라하는 국내 실업팀들을 꺾고, 세계 랭킹 2위 캐나다까지 이겼다. 비유하자면 잉글랜드 4부 리그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긴 뒤, 챔피언스리그에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까지 꺾은 것과 비슷한 정도다.
지난달 출국하기 전 선수들을 만났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데 선수들이 “꼭 알렸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기자를 붙잡았다. 최근 탈 많은 대한컬링경기연맹에 쓴소리를 쏟아내려는 줄 알았다. 대표팀은 지난해 11월부터 김용빈 신임 회장이 업무를 시작한 지난 2월까지 정식 훈련을 못하고 있었다. 연맹 회장 대행이 수차례 사임하는 사이 생긴 행정 공백으로 훈련장 대관비조차 지원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뜻밖에도 “연맹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는 연맹이 아니라 연맹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평생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는데도 훈련을 못하고 있으니, 이를 안타까워한 연맹 직원 4~5명이 사비(私費)를 모아 경기장 빌릴 돈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그 덕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나마 빙상 위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무직인 선수들이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다 못해 서울에서 의정부 훈련장을 일부러 찾아 ‘고기 사 먹으라’며 10만원 남짓한 돈을 쥐어주고 돌아가기도 했다.
이런 ‘미담’을 들으면 마음이 훈훈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참담했다. 직원들이 봉급을 턴 까닭은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밥그릇 싸움’에 한창 다투는 ‘윗선’을 욕하다가, 지원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고 그마저도 없자 주머니 속 돈을 꺼내 선수들에게 쥐여줬을 그 마음을 떠올려봤다.
지난달 새로 임기를 시작한 김용빈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꾼다는 말처럼, 연맹도 모든 걸 다 바꿀 생각”이라고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런 취임사 내용은 전혀 새롭지 않게 들렸다. 2019년에 당선됐던 김재홍 전 회장도 처음 연맹을 맡으면서 “그동안 체육계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 중 일부가 컬링계에도 있는지 살펴보고 고치겠다”고 하더니 9개월 뒤 부정 채용 의혹에 휘말리며 자진 사퇴했다.
김용빈 회장이 요즘 “현장에 답이 있다”며 ‘지역별 순회 간담회’를 다닌다고 한다. 앞으로 행보를 기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 아쉬움도 남는다. 외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 돈을 털어 조용히 선수들 뒷바라지를 했던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먼저 나타냈다면 어땠을까. 고위직의 밥그릇 싸움에 흔들리는 연맹을 꿋꿋이 지탱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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