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판론 분출한 4·7 재보선, 여권 뼈깎는 쇄신을

한겨레 2021. 4. 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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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박형준 서울·부산시장 당선
국민, 집값 폭등·여권 위선에 분노
국민의힘도 '민심' 아전인수 말아야
7일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왼쪽)와 박형준(오른쪽)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김영춘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집계 결과,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김영춘 후보를 크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주며 야당을 심판했던 민심이 불과 1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야당의 압승은 집값 폭등으로 귀결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서민 주거권을 지키겠다며 전셋값 상승을 억제하는 임대차보호법을 발의해놓고는 정작 청와대 정책실장과 민주당 의원들은 법안 통과 직전 ‘선제 인상’을 한 ‘표리부동’이 심판론의 분출을 촉발했다. 민주당은 오세훈·박형준 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며 반격했지만, 표심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재보선 결과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민심의 경고를 뼈저리게 받아들이고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이번 재보선 민심의 저류에는 집권세력의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위선적 행태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계기로 집권세력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2030세대가 분명하게 돌아선 것도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의원 등의 전셋값 인상을 전형적인 ‘내로남불’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단호한 윤리적 쇄신 없이는 민주당이 국민 신뢰를 되찾기 어려울 것임을 말해준다.

민주당은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해 진행 중인 민주당 의원의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 등을 엄격히 실행해, 혐의가 드러나면 누구든 엄중히 책임을 묻는 특단의 대처에 나서야 한다. 과반 정당을 포기하더라도 집권여당 내에서 투기와 부패의 싹은 반드시 잘라내겠다는 각오로 임하지 않는다면 1년도 채 안 남은 대통령 선거도 힘들어질 수 있다.

재보선 패배로 임기 1년을 남긴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커졌다. 문 대통령은 전면 개각을 포함해 대대적 쇄신에 주저해선 안 된다. 청와대와 내각을 비롯해 공직사회 전반의 도덕적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망국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집값 안정과 주거권 실현을 염원하는 민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의도와 달리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책은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투기 근절과 집값 상승에 걸맞은 보유세 강화, 공공 주도 주택공급 확대라는 정책 기조까지 함부로 손을 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직자 투기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등 개혁 입법에 더는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민주당은 중도층뿐 아니라 여권 지지층에서도 상당한 이탈이 발생한 이유를 깊이 돌아봐야 한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 등 민생개혁 입법에선 한발 빼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지지층이 민주당에 계속 표를 줘야 할 이유와 명분을 잃게 한 점 또한 이번 선거 패배의 주된 요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총선 이래 전국 단위 선거 4연패 끝에 소생의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고 이번 재보선 승리를 자신들이 잘해서 국민 지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냉정히 말해, 유권자들은 집권세력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방법으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민의힘은 대안세력으로 국민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선 부단한 자정과 쇄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오세훈·박형준 후보는 선거 과정에서 끊임없이 도덕성 의혹이 제기된 점을 깊이 자성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1년2개월여 시정을 이끌면서 혹여라도 재보선 민심을 아전인수식으로 받아들여 부동산 정책의 밑동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길 바란다. 특히 오 후보는 서울 도심 재건축 규제를 풀고 대규모 민간 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부동산값 폭등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자신의 강남 아파트 전셋값을 1억원(23.3%)이나 한꺼번에 올려놓고는 “(시세보다) 낮게 받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지 않냐”고 강변하는 등 염치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행태를 고치지 않으면 국민의힘의 승리가 예외적 돌출에 그치지 않으리라 단언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는 1년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 국민의힘이 승리했지만, 이번 재보선 결과가 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지리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누가 더 민생을 보듬을 대안을 내고 정의·공정의 가치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일 것인지가 차기 대선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여야 모두 곧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대선 경선을 준비하게 된다. 재보선에 담긴 민심을 똑바로 읽고 겸허한 자세로 실천해야 할 책임은 승리한 야당과 참패한 여당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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