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민심, '내로남불' 응징하다

2021. 4. 7. 23: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 '독선‧독주'에 경종..내년 대선 '시계제로'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4.7 재보궐선거가 국민의힘 후보들의 압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한 집권여당과 주요 선거 4연패 사슬을 끊은 야당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려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 미칠 파급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민심은 1년 전에 '경고음' 울렸는데…

7일 서울‧부산시장 보선은 개표 초반부터 두 자릿수 격차로 벌어져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를 짐작케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57.5%를 얻어 39.18%에 그친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18.3%퍼센트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는 62.67%를 얻어 민주당 김영춘 후보(34.42%)를 28%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선거 일주일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15%포인트 안팎이던 격차가 선거 막판에도 유지됐거나 더 벌어진 셈이다. 투표율도 매우 높았다. 법정공휴일이 아닌 평일에 치러졌음에도 재보선 전체 잠정투표율은 55.5%로 집계됐다. 광역단체장 보궐선거 사상 최고치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선 잠정투표율도 각각 58.2%, 52.7%에 달했다.

민주당은 높은 투표율을 지지층 결집 효과로 해석하며 역전을 자신했지만, '샤이 진보'는 없었다. 반면 현 정부를 향한 '분노 투표'를 독려한 국민의힘 선거 전략은 그대로 적중해 압승을 거뒀다.

"유권자들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표출된 결과"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두 자릿수 격차와 역대급 투표율은 정부여당의 독주에 대한 '응징 투표'라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지난 2017년 대선부터 민주당이 수혜를 독차지해왔던 '탄핵 정부 심판론'이 '문재인 정부 심판론'으로 확연히 방향을 바꾼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년 후에 치러진 지방선거와 임기 종료 1년 전에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 결과는 이 같은 극적인 변화를 드러낸다.

2018년 6.13 지방선거 득표율은 민주당 박원순 52.8%, 자유한국당 김문수 23.3%, 바른미래당 안철수 19.6% 순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40%에 미달한 박영선 후보의 득표율은 3년 전 박원순 득표율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반면 6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보인 오세훈 당선자는 3년 전 김문수+안철수 득표율(42.9%)을 크게 넘어섰다.

서울 지역에서 민주당 초강세 정치 지형이 해체된 변곡점은 지난해 치러진 21대 총선이었다. 당시 서울 49곳의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은 41곳을 쓸어갔다. 그러나 정당투표 형식인 비례대표선거 득표율에선 사뭇 다른 양상이 드러났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각각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해 내세웠다. 서울에선 더불어시민당 33.2%, 미래한국당 33.1%, 정의당 9.7%, 국민의당 8.3%, 열린민주당 5.9% 순으로 집계됐다. 정의당을 제외하면, 민주당 계열 정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 : 39.1%)보다 보수 계열 정당(미래한국당+국민의당 : 41.4%) 득표율이 앞섰다.

전국적으로 174석을 휩쓴 당선인 수치로만 보면 민주당 압승이 분명했지만, 정당투표 결과로 드러난 저간의 민심은 여권에 '노란불'을 깜빡였던 것이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부 견제론' 응집이 시작된 시점도 지난해 4월 총선 이전이었다.

"겸손, 안정, 신뢰" 다짐은 사라지고 1년 만에 '내로남불'

180석을 쓸어 담은 총선 대승을 거둔 직후, 여권은 겸손한 태도를 다짐했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정치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어항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보고 있는 어항 속에서 투명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공직자의 도리"라고 했다.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독보적 1위를 달리던 이낙연 의원도 "국민 앞에 조금이라도 오만이나 미숙, 성급함이나 혼란상을 드러내면 안 된다. 항상 겸손하며 안정감, 신뢰감, 균형감을 드려야 한다"며 "국민들이 우리에게 준 책임을 이행하려면 국민의 뜻을 모으고 야당의 협조도 얻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짐과 달리 21대 국회에서 드러난 정부여당의 행보는 일제히 강성 지지층에 기댄 독주 일변도로 흘렀다. 팽창하는 권력욕을 제어 못한 민주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 권력 방어를 위한 법무-검찰 갈등이 촉발됐다.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한 궐위 때문에 열린 선거에 민주당은 '무공천' 당헌을 뒤집어 후보를 공천하는 파렴치한 결정도 서슴지 않았다. 선거 기간에도 성추행 피해자를 향한 민주당 주변 인사들의 2차 가해성 발언이 끊이지 않았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 압축되는 문재인 정부 핵심 가치마저 조국 사태와 부동산 투기 논란을 거치며 연달아 훼손됐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파헤친 '적폐청산'의 칼날이 현 정부로 향하자 문 대통령마저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감쌌다.

문 대통령이 명명한 "부동산 적폐청산" 역시 여권 인사들의 위선적 행태가 드러나면서 정부여당 도덕성에 치명상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중도층과 진보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연령별로는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이 야당 후보 지지로 돌아서는 악재를 초래했다. 민주당의 독선적 태도에 '민주-진보 대연합'은 일찌감치 해체됐다.

여권의 지속적인 검찰 때리기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치적 존재감만 키우는 역효과를 냈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윤 전 총장은 '상식과 정의', '법치와 공정'을 강조하며 선거를 쥐락펴락했다. 정부 심판론 결집에 구심점 역할을 한 그의 대선 출마는 이미 기정사실화 됐다.

대선 전초전으로 주목받은 4.7 재보선이 마무리되면서 정치권의 시선은 내년 대선으로 넘어간다. 30%대 초반으로 내려앉은 문 대통령 지지율, 동반 하락하는 민주당 지지율, 정권 교체론 강세 등 기저 지표가 여권에 심상치 않다. 여기에 윤 전 총장의 고공 지지율까지 지속될 경우, 4.7 재보선 참패를 당한 여권의 후폭풍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권교체를 향한 디딤돌 놓기에 성공하며 재보선 고비를 가뿐하게 넘은 국민의힘에 대선까지 순탄한 여정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국정농단으로 파탄 난 과거 정부의 퇴행이 잊혀지기에 충분한 과거가 아닌데다, 임기를 마감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탈박근혜 드라이브'가 광범위하게 안착했다고 평가하기도 이르다.

양당 체제가 보장하는 반사이익의 수혜를 누린 국민의힘은 향후 야권 재편 주도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윤 전 총장에 크게 밀리는 당내 대선 후보군의 지지부진이 지속되고 당내 혁신에 실패하면, 이번 재보선 승리가 향후 대선 정국에 예상치 못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