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심은 정권을 매섭게 심판했다

2021. 4. 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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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4·7 재·보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최대 승부처인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서 두 자릿수 표차로 크게 이겨 2016년 총선부터 대선·지방선거·총선으로 이어진 전국선거 4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180석의 거여(巨與)가 된 더불어민주당은 1년 만에 성난 표심과 마주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치른 선거에서 4년 만에 첫 패배의 굴레를 썼다. 민심이 ‘정권 심판’을 선택한 것이다. 여권은 뼈를 깎는 쇄신과 성찰로 임기 말 국정운영 동력을 유지·회복하는 것이 급선무가 됐고, 대여 견제의 힘을 되찾은 야권은 ‘수권 능력’을 키워야 할 숙제를 받아들었다.

먼저 정치사엔 역대 최고의 재·보선 투표율이 기록됐다. 7일 전국 21곳에서 치러진 투표엔 유권자 1216만여명 중 674만여명(55.5%)이 참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강남3구에서 특히 높았던 서울시장 선거 투표율은 58.2%에 달했다. 재·보선 투표율이 50%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결과적으로 ‘분노의 표심’이 ‘역대급’ 투표율을 이끈 셈이다.

여권은 서울 선거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완패했다. 국정 이슈와 정치의 민감도가 높고, 세대와 출신 지역도 골고루 섞여 있는 서울은 민심의 풍향계이다. 역대 선거에서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적던 서울에서 두 자릿수 표차가 난 것부터 극히 이례적이다. 강남·북 모든 권역에서 밀린 여당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면제할 수 있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밀어붙이며 시작한 부산시장 선거도 참패를 비켜가지 못했다. 여당으로선 애당초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폭력 문제로 자초한 선거에서 ‘실정의 압축판’이라 할 부동산 문제가 직격탄이 됐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위에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박주민 의원의 내로남불식 임대차계약까지 얹어지면서 ‘촛불정부’를 자임한 집권세력의 신뢰와 공정성이 뿌리째 흔들린 것이다. 더 멀리는 총선 후 거여가 주도한 정치·민생·개혁도 시민의 눈높이엔 못 미쳤다. 뒤늦은 사과도, 거듭나겠다는 읍소도, 야당 후보의 거짓말과 부동산 문제를 파고든 공격도 정권 심판의 역풍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젠 청년·부패 이슈에서 상대적 우위를 누리던 ‘야당 덕’도 종지부가 찍혔다고 할 수 있다. 여권은 ‘내 눈의 들보’부터 보는 환골탈태 없이는 1년 앞의 대선도 적색등이 켜졌다는 걸 명심하고, 민심 이반의 최대 축이 된 부동산 적폐 청산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야권은 기대와 과제를 동시에 받아든 선거였다. 지방선거·총선에서 참혹하게 패했던 서울에서의 승리는 무너진 국정 주도력을 일정 부분 되찾고, 국정농단 탄핵 후 멀어진 청년·중도층의 표심을 회복할 수 있는 전기가 됐다. 서울·부산이라는 두 중심도시에서의 승리로 패배와 분열의 역사를 끊고, 대선 교두보를 다진 것도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제1야당을 보는 유권자의 눈은 여전히 차가움이 가시지 않았다. 서울·부산 시장 후보부터 큰 홍역을 치른 부동산·도덕성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도 재현됐다. 스스로도 “우리가 잘해서 표를 달라는 게 아니다”라고 몸을 낮췄듯이, 시민들의 귀를 잡는 정책·공약보다는 심판론의 물결에 올라탄 선거였던 셈이다. 대여 협상력과 지방정부를 이끄는 책임이 더 커진 야권으로선 국정운영에서 짊어질 몫도 무거워졌고, 수권 능력도 본격 시험대에 섰다.

이번 선거는 민심이 얼마나 냉정하고 매서운지 다시 보여줬다. 여야는 차선·차악도 따진 유권자의 표심을 직시하고, 겸허히 민의를 새겨야 한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치러진 선거는 참패한 여권에도, 기사회생한 야권에도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국정 책임을 나눠 진 여야는 코로나19 국난 극복에 힘을 모으고, 일자리·경제·부동산 해법 찾기에서도 협치의 새 틀을 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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