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기본소득은 '정의롭지 않고 포퓰리즘이다'? / 조경환

한겨레 2021. 4. 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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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재정에서 일정 금액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지급하여 일종의 소득으로 자리 잡게 하려는 개념으로 다들 이해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소리> (VOA)와 일본 <엔에이치케이> 가 국내 기본소득 논쟁을 주목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출구 부분(세출)에서 기본소득은 납세자에게는 세금 환급이며 면세자에게는 일종의 정부보조금 효과를 준다.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이 뉴노멀인 시대, 기본소득은 싫든 좋든 공공 어젠다에서 국가 어젠다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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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환ㅣ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행정학 박사

기본소득은 재정에서 일정 금액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지급하여 일종의 소득으로 자리 잡게 하려는 개념으로 다들 이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시대, 정보와 지식의 급격한 비대칭이 격차의 만성적인 확대로 이어져 종국에 시장경제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한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제아무리 근사한 전기차를 만들어 낸다 한들 소비자가 소득이 없으면 누가 사겠느냐고도 한다. 최근 <미국의 소리>(VOA)와 일본 <엔에이치케이>가 국내 기본소득 논쟁을 주목하고 나선 것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안의 논쟁은 바깥보다 치열하다. 여권의 이낙연 전 대표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약자에게 ‘두텁게’ 지원해야 하는 경제정의에 반한다며 못내 불편해한다. 홍준표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은 ‘국가채무 1000조 시대’를 앞두고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한걱정이다.

첫째, 정의롭지 않다는 시각은 왜 ‘이재용 아들’과 코로나 때문에 문 닫은 영세자영업자 아들에게 똑같이 ‘50만원’을 나누어 주어야 하느냐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는 세입세출의 재정프로세스 전체를 보지 않은 소치이다. 기본소득의 출구만 보고 입구에는 눈을 감은 것이다. 입구인 세입 측면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근로소득면세자가 40%에 육박한다. 나머지 60%도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하여 누진세를 내고 있다. 입구에서 이미 조세정의와 소득재분배는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출구 부분(세출)에서 기본소득은 납세자에게는 세금 환급이며 면세자에게는 일종의 정부보조금 효과를 준다. 만약 출구에서조차 차별하여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준다’면 이야말로 이중차별이다. ‘내가 세금으로 낸 피 같은 돈’이 면세자에게만 계속 가는 구조를 과연 납세자들이 용납하겠는가. 조세저항은 시간문제다. 세입에서 목적세를 거론하는 고민의 지점이 여기에 있다.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 불경제를 야기하는 곳에 세금(‘피구세’)을 부과한다든지, 불가항력적인 디지털 격차에 ‘디지털세’나 광의의 국가 공공재인 토지에 ‘국토보유세’를 걷자는 구상이 그 일환일 것이다.

둘째, 기본소득이 ‘퍼주기’이고 ‘베네수엘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시각은 전제부터 왜곡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매장량 세계 1위인 자원부국이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물값보다 싼 석유값을 한탄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국가는 그 자원을 언제든 동원할 수 있고 국가가 부자이다. 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그렇듯 자원은 무한정하다. 그래서 퍼주기가 가능하고 포퓰리즘이 가능한 나라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국민은 눈에 불을 켜고 세금의 종착지를 살핀다. 국회의 세입과 세출 통제는 법이고 일상이다. 언론은 예민하다. 이 땅에 어느 정치인이 포퓰리스트 소리를 듣고 정치생명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겠나. 자원이 빈약하고 오직 세금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퍼주기 도미노’는 어쩌면 그래서 기우이다.

마지막으로, 재정학자들과 행정학자들은 재정정책의 오작동과 함정을 오랫동안 눈여겨보아 왔다. 재정당국을 통한 지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논점을 이어오고 있다. 거기에는 정책 실패도 있고 비효율도 있고 역기능도 있고, 불신도 존재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논쟁적 메커니즘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정책소비자에게 현금으로 지불(‘in cash’)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이 뉴노멀인 시대, 기본소득은 싫든 좋든 공공 어젠다에서 국가 어젠다로 넘어가고 있다. 정치와 진영논리의 장막을 걷어 낼 때가 왔다. 그래야 비로소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논쟁하고 제대로 실험해보아야 한다. 그게 실사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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