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준 칼럼] 교육은 가정을 보완해야

황선준 2021. 4. 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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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김선희 교사의 칼럼은 경쟁 교육과 타성에 찌든 나에게 교육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한 학생이 병치레 등으로 지각, 결석, 조퇴를 밥 먹듯이하며 공부도 않고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하다 결국 자퇴한다. 학생의 부모는 학생의 사춘기 시절부터 많은 갈등을 겪다 별거하고 학생의 양육을 서로 미루며 돌보지 않는다. 18세의 상처투성이 학생이 그래도 복학하여 김선희 교사 반에 속한다. 교사는 학생이 그 힘든 일을 견뎌내고 다시 복학한 용기를 '대단하다'라고 칭찬하며 최선을 다하여 돌본다.


주위 교사들의 비난과 비판이 쏟아진다. 일부는 지각, 조퇴, 결석이 잦아 다른 반이라면 학교를 못 다녔을 텐데 그 교사 반이라 다닌다며 형평성에 문제 있다고 한다. 다른 교사는 다음과 같이 힐난한다.


"여기는 학교예요.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데다 가정에서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아이를 왜 선생님이 끌어안고 뒤치다꺼리하느라 고생인지 모르겠어요."


이에 대해 김선희 교사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맞아요. 여기는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학교예요. 하지만 동시에 양육기관이라고도 생각해요.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이 당연하나 때로는 부모 자신조차 돌보기 어려운 위기에 빠지기도 해요. 공교육은 개인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의 역할은 가정환경이 좋아 학교 없이도 가정교육이나 사교육으로 커갈 수 있는 아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적인 위기의 순간에도 아이들의 안전지대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공교육 기관뿐이에요."


김선희 교사는 이런 철학으로 그 학생을 '끌어안고 뒤치다꺼리하여' 상급 학년에 진급할 수 있도록 했다. 김선희 교사가 보여준 것은 '교육은 가정을 보완하는 것'이라는 그야말로 엄청나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사회•교육철학이다. 이것은 스웨덴이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가장 강조한 교육철학 중 하나다. 국가는 교육을 통해 가정을 보완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란 시간에 제한되지 않고 연속된 중앙 및 지방 정부를 통칭하는 공권력을 말하고 보완은 국가의 오른팔, 왼팔인 교사가 하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학생들에게 지식과 역량을 갖추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제대로 못 해서 생기는 결과는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되며 특히 민주시민으로 키우지 못할 때는 사회적•국제적으로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어떤 부모한테서 태어나는가는 우연이다. 운이 좋아 좋은 교육환경에서 태어나는가 하면 운이 좋지 않아 교육받지 못한 부모, 가난한 부모, 장애 부모, 다문화 부모 등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는 이 모든 아이들에게 지식과 역량을 갖추게 하고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키워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라면 가정의 부족함을 국가가 꼭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많은 연구를 통해 알고 있다. 부모의 교육 정도가 높고 소득이 높은 가정, 즉 교육환경이 좋은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성적이 좋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가 같은 현상을 보여준다. 스웨덴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게티이미지


교육환경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공부머리(재능)를 타고났을 확률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공부를 해야 된다는 당위성 강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할 확률도 크다. 존 롤스(John Rawls)는 이것을 정의(justice)라고 보지 않았다. 공부머리를 물려받는 것도 불공평한 것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려는 의지도 타고난 재능과 함께 우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그리 공평(equity)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가정이라는 변수에 의해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단지 의무교육이라는 기회균등만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롤스는 '차등 원칙'을 주장한다. 즉 불평등을 인정하되 사회적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불이익을 제공하여 강제적으로 평등을 달성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신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교사는 더 많은 '돌봄', 즉 열정(engagement)을 바쳐 단지 기회균등이 아닌 '가능성의 평등'(equal in possibility)을 제공해야 롤스가 말하는 정의(justice)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하여 가정을 보완해야 된다는 이 정의론은 왜 실제로 중요할까? 교육이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결국 출생에 따라 교육 성취도가 달라지고 이것이 세대를 거치며 교육 세습이 이뤄진다. 이는 곧 부의 불공평과 세습으로 고착화될 확률이 커지며 공식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신분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이를 용인하지 않으며 교육을 통하여 세습과 신분사회 고착화 고리를 끊으려는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 정권은 세계 제2차 대전 이후부터 바로 이 점에 천착하여 '교육 민주주의'란 이념 아래 '계급 여행' (klssresa, social mobility)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을 펴왔다. 말하자면 노동자, 농민의 자녀가 교육을 통하여 판•검사, 의사 등이 되어 중산층이 되는 것을 계급 여행이라 불렀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교육 민주주의라고 했다. 영어의 사회적 유동성이라는 개념과 유사하다. 1940년대부터 연구•조사와 시범을 거쳐 1960년대 초 전격적인 9년제 기초학교로의 통일, 1970년대 고등학교 보편화, 1980년대 대학 문호 개방이 이런 정책들의 일환이며 계급여행과 교육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은 누구든 원하면 대학원 교육까지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교육 체제 내에서 지자체 성인교육을 제도화하고 사회단체들과 공민학교의 성인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어떤 이유에서든 제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제2, 3의 교육기회를 제공하여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스웨덴이 교육 민주주의에 온전히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교육환경이 열악한 노동자 계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률은 교육환경이 좋은 중산층의 대학 진학률보다 낮다.


오랫동안 교육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온 스웨덴이 아직도 계급 여행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방증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SKY대를 위시하여 일류대학의 입학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은 학생들이 거의 독점하는 시대가 왔다. 국가의 가정 보완 역할은 점점 약화되고 계급 여행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교육 민주주의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고 특목고 등을 통한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과 장점을 강조하는 나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스웨덴의 경우 계급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들은 오래전부터 확립되었지만 학생들에 대한 교사들의 열정(engagement)이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다. 국가가 가정 보완 역할을 제도적으로 하지 못하면 일선 교사들만의 노력으로는 계급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오른팔•왼팔로서 수없이 많은 김선희 같은 교사가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로 고착되는 것을 막고 역동적인 민주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더욱이 출생률 세계 최하위인 우리에게는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할 여유가 없다. 특히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더욱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교육을 통해 가정을 보완해야 된다는 민주주의 철학으로 무장된 교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제도와 철학이 부족한 국가를 조금이라도 보완할 수 있다.


스웨덴 = 황선준 글로벌 리포터 sunjoon.hwang@gmail.com


■ 필자소개

전 서울·경남교육정보원 원장

전 국가교육회의 위원

전 스웨덴 국가교육청 정책평가 과장

스톡홀름대학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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