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진보도 보수도 부끄러운 / 김선기

한겨레 2021. 4. 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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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단대부고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21.4.7 연합뉴스

|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본격적인 재보궐선거 레이스에 접어들면서 나온 여론조사에서, 20대 유권자의 다수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는 곧바로 청년세대 보수화의 지표로 여겨지면서, 청년세대의 정치의식에 관한 담론이 또 한번 팽배하도록 만들었다. 일부 여당 정치인이나 지지자들은 젊은층을 훈계하거나 비난하는 언사로 논란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청년보다는 장년층을 핵심 지지층으로 두었던 야당 쪽에서 오히려 2030세대에게 호소하며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전통적으로 진보적이라고 가정해왔던 젊은 세대가 ‘진보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은 매우 예외적이라 여겨져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20대 남성 코호트(추적집단)가 현 정권에 등을 돌렸던 2018년의 자료까지 함께 모아 젊은 세대가 보수화되어 노년층과 비슷한 정치 성향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그러나 ‘청년세대 보수화’라는 진단은 다소 성급하며, 청년의 가치관과 정치 지향을 기성의 언어로 재단해버린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

우선 1990~2000년대생인 현재 20대의 투표 성향이 세대적으로 고착될 것이라 예단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0년대 후반에도, 20대 보수화론이 고개를 들었던 과거가 있다. 당시에도 20대 코호트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거나 스스로 ‘보수’라 응답한 비율이 높게 나오는 등의 일시적인 근거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불과 5년 만에 2012년 대선에서 ‘2030 대 5060’의 세대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다시 진보적 유권자로 정렬되었다.

젊은층의 정치 성향을 두고, ‘민주 정권 시기에 학교를 다녀서’ 진보 성향이 되었다느니, 혹은 ‘청소년기에 경쟁 교육을 받아서’ ‘역사적 경험이 부족해서’ 보수화되었다느니 하는 말들이 반복된다. 어떤 세대의 특성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이들의 성장 배경은 특권적인 지위를 누려왔으나, 특히 정치의식과 관련하여 특정한 주체의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누적된다.20대 코호트의 투표 향방은 이들의 안정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때마다의 여론 흐름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세대 효과라기보다는 시기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청년이 보수화되지 않았다 해서, 그들이 여전히 진보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고수하며 청년에 관해 손쉽게 분석하려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 있다. 청년세대의 정치 성향에 관한 정치학 연구들은 수년 전부터 이미 젊은 세대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성향 체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정치와 관련한 청년세대의 특성은 보수화도 탈정치화도 아닌 탈이념화에 가깝다. 탈이념이라 해서 청년에게 이념과 가치관이 전혀 없다고 볼 순 없다. 다만, 오늘날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가치관을 기성의 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그것이 주류적인 정치학에서 보편적인 변인으로 오래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정당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정치 현장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다수 인터뷰해왔다. 연구 과정에서 많은 청년에게 진보나 보수라는 정체성이나 이름 자체가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음을 체감했다. 일반적으로 진보정당으로 여겨지는 정당에서 활동하는 한 청년은 자신의 활동이 진보 진영을 위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스스로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고 여기던 청년들도 자신의 정치 성향이 한국의 주류적인 보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요컨대 이들에게는 ‘진보’와 ‘보수’ 모두 동일시하기에는 부끄러우면서 동시에 이미 한국 정치사 내에서 오염되어버린 언어에 가깝다. 오염의 핵심은 ‘진보’가 더불어민주당, ‘보수’가 국민의힘으로 치환되어버리는 거대 양당 체제의 마술에 있다. 선거 결과가 나옴에 따라 분명 2030세대의 표심에 대해 설왕설래하겠지만, 청년은 무관심하고 냉소할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청년을 정의해 이용하려는 두 세력을 그저 부끄럽게 느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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