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품인데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자존심 상한다"
(시사저널=김재훈 일본 ‘라미TV’ 운영자)
일본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은 가장 많은 사용자(약 8600만 명)를 자랑한다. 게다가 일본 정부와 지자체 등이 서비스 제공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도로 중요한 사회 인프라로도 정착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라인이 개인정보 관리 문제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3월17일 아사히신문의 '라인의 개인정보 관리 미비, 중국의 위탁 회사가 접근 가능한 상태'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최근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라인' 비판 기사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라인의 이데자와 다케시 사장은 "부적절한 사안은 없었으며,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도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에서는 개발 등을 중국에 위탁한 것이 문제라며,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에서 2017년부터 시행된 '국가정보법' 때문이다. 이 법으로 인해 일본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중국 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 언제든지 넘어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상과 이미지, 결제 정보, 건강보험증 등의 데이터가 한국에 있는 서버에 저장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추가로 밝혀지자 파장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이 더욱 커졌다.
'라인' 외에 대체재가 없는 일본의 현실
자민당은 라인이 구멍투성이라고 혹평했고, 개인정보관리위원회에서는 법적 조치까지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일본 최대 야당인 입헌민주당까지 정부 기관과 지자체의 라인 사용 일시 중지를 강하게 요구했다. 얼마 뒤, 일본 정부와 많은 지자체가 이에 호응해 라인의 일시 사용 중지를 선언했다.
이데자와 라인 사장은 결국 3월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하며, 이미 중국에서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완전히 차단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의 서버에 보존하고 있는 데이터도 6월까지 일본 서버로 이전할 것이며, 공공 서비스 기능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앱이 일본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지금, 일부 데이터가 한국 서버에 저장된다는 것만으로 일본 전체가 이렇게까지 거세계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현상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배경이 무엇일까.
때마침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3월30일, 한국과 EU(유럽연합) 간 일반개인정보보호법 적정성 논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음을 확인해 초기 결정이 채택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한국은 EU의 개인정보를 한국 국내로 이전할 때 EU 회원국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적정성 초기 결정에는 공공분야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이번 결정으로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언론에서는 단지 라인의 데이터가 한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과 같은 위치에 놓고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내 이런 분위기의 이면에는 한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최근의 한·일 관계 탓이 크다. 이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라인이 한국 기업(네이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 대한 불만과 그런데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자존심이 상한다는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일본 내에서 심심찮게 제기돼 왔다.
실제 이번에 라인 사태가 터지자 많은 일본 네티즌은 '그것 봐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일본 방송 역시 라인 때리기에 너도나도 나서는 모습이다. 3월27일 TV아사히의 정보 방송인 《뉴스 나카이》의 한 출연자는 "라인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을 무렵, 이것은 해외 기업(한국)에서 만든 것이니까 정보가 유출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발언을 했고, 다른 출연자가 그 발언에 맞장구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일본 사회가 이번 사태로 라인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과 인터뷰에 응한 일본 시민들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단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라인이 '한국 제품'이 아니라 철저히 '일본 제품'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야 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바일 메신저가 '한국 제품'이라는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작 일본의 열악한 IT 환경은 외면
정작 이번 라인 사태를 통해 일본 IT 환경의 실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월23일 TV도쿄의 메인 뉴스인 《WBS》의 야마카와 다쓰오 해설위원은 "사실은 일본의 많은 기업이 중국에 일을 맡기고 있다. 게다가 정보 유출에 대한 인식이 방만해져 있었던 기업은 지금 등골이 오싹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는 일본의 IT 인재 부족, 비싼 전기세, 많은 재해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정부가 경제 합리성에 맞지 않는 요구를 일본 기업에 하기 위해서는 더 명확한 규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측은 더 헤매게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번 라인 사태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다른 몇 가지 사건이 있다. 우선 일본 대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겪었던 일화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자 손 회장은 지난해 3월11일, 간이 PCR 검사를 우선 100만 명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돌아온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그 이유는 "일본 정부도 확보하지 못한 것을 손 회장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었나"라는 의심의 목소리부터 "의료기관의 혼란만 초래한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손 회장은 아쉬움을 표시하며 계획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브라질 태생인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닛산자동차에서 퇴출당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본 사회 분위기가 잘 드러났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곤 전 회장을 몰아내는 주역이었던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전 CEO도 곤 전 회장의 체포와 축출 명분이었던 부당 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2019년 9월16일 물러났다. 하지만 곤 전 회장과 달리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이렇듯 이번 라인 사태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 뿌리 깊은 한국 불신과 함께, 외국인과 재일 한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일본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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