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이 광주고 부마고 대구다 [편집실에서]

2021. 4. 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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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오가는 길이면 종종 매캐한 최루가스를 마셔야 했습니다. 도심에서 구름처럼 밀려온 가스는 때로 학교 창문을 넘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쏟아졌지만, 선생님은 “창문 닫으면 괜찮다”며 무심한 척했습니다. 부모님은 절대 큰 도로에는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춘기 시절 멀리서 ‘펑펑’ 터지던 최루탄 소리는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했습니다. 대학생 형들이 잡혀가고 두들겨 맞고 심지어 죽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TV에는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특별담화를 발표했습니다. 6·29선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시민이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최루가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6월항쟁’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번에 얻은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대구 2·28 민주운동을 시작으로 부마항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쳐 30여년간 피 흘려 쟁취한 역사입니다. 민주화의 결과로 수립된 문민정부가 하나회를 청산하면서 이 땅은 길었던 군사정권의 악령에서 벗어났습니다.

주간경향 이번 호 표지를 보셨습니까? 아마도 미얀마로 수출된 우리 중고 시내버스인 모양입니다. ‘천연가스버스가 만들어갑니다’라는 한글이 선명합니다. 이 버스에 탄 미얀마인들이 세 손가락을 내밀며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버스 속 인물들이 미얀마인이 아닌 한국인이었다면 6월항쟁 때의 사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입니다. 5·18 속 광주라고 해도, 부마항쟁 속 부산·마산이라고 해도, 2·28 민주운동 속 대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미얀마 기자들로부터 많은 사진을 받았습니다. 너무 잔인해 언론윤리상 차마 공개할 수 없는 사진도 많았습니다. 한 기자는 그 사진을 찍느라 손에 총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카메라를 떨어뜨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문자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쟁취하지 못했다면 그는 ‘나’였을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인 것 같아도 지난 40년간 이만큼 꾸준히 성장한 나라는 찾기 힘듭니다. 민주화와 군부 청산은 어지간한 정치·경제적 위기에도 국가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시민은 촛불을 들어 의사를 표시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군은 어떠한 혼란에도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외부로부터 국토를 지키고 있습니다.

4월 7일은 재보궐 선거일입니다. 정치가 하도 난장이라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하는 유권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미얀마인들은 그 한표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누구를 찍어도 좋습니다.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WhathappeninMyanmar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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