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영화 재개봉 열풍과 세기말 '홍콩' [방구석 극장전]

2021. 4. 7. 09: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많은 명작 영화들이 불황기 극장가의 구원투수로 재개봉 중이지만, 특히 왕자웨이(왕가위) 영화의 돌풍은 주목할 만하다. 왕자웨이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화양연화〉는 지난 연말 국내 재개봉 후 개봉 당시보다 훨씬 큰 흥행실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 뒤를 이어 올해 3월부터 〈중경삼림〉 등 다른 작품들도 속속 재개봉과 기획 상영으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포스터 디스테이션


오랜 세월 ‘홍콩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처럼 우리 기억의 일부가 돼왔다. 〈취권〉 같은 쿵푸 물로 출발해 〈영웅본색〉을 위시해 ‘홍콩 느와르’로 부르던 선 굵은 남자들의 땀 냄새가 풍겨오던 갱스터와 무협의 이종교배, 〈황비홍〉 같은 역사 무협, 〈동방불패〉나 〈천녀유혼〉처럼 SF·판타지, 〈도성〉 같은 도박영화에 이르기까지. 홍콩영화는 당대의 톱스타들과 함께한 세대의 문화적 체험으로 자리 잡았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홍콩영화 황금기는 두 번째 밀레니엄 직전에 종말을 맞는다. 아시아 각국의 영화계 발전과 지나친 자기복제 같은 내재적 요인도 있지만, 결정타는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의 반환이란 역사적 전환이었다. 이 시기 수많은 영화인이 화교 사회가 발달한 동아시아 각국과 대만, 영연방권으로 떠난다. 많은 이들이 떠나간 자리에서 최후의 전성기를 구가한 양대 산맥은 주성치로 대표되는 코미디와 왕자웨이의 영화들이었다.

왕자웨이 영화는 고독과 허무의 정서로 가득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홍콩 반환을 앞둔 그곳 주민들의 심정을 투영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마천루와 야시장의 풍경과 함께 아시아와 서구 문명이 혼재된 이국적 풍광이 감독 특유의 유려한 영상미로 극대화되기에 영화를 본 이들은 자석에 끌리듯 홍콩을 찾게 되곤 한다. 역설적으로 홍콩 관광업계에는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감독은 여전히 현역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전성기이자 홍콩영화 황금시대의 마지막 잔향으로 떠올리는 건 〈아비정전〉에서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원제 춘광사설)〉, 〈화양연화〉, 〈2046〉에 이르는 시기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그 덧없음을 진한 쌉쌀함으로 전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태도와 감정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것들이기에 왕자웨이의 영화는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는 중이다.

일본에선 2018년 전후로 그의 대표작들이 넷플릭스로 소개되면서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컬트 현상이 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영화와 세대를 달리하는 열혈 팬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홍콩의 청춘들이 겪었던 상실과 불안의 정서는 시공간과 국경을 초월해 21세기 동아시아 청년세대에게도 익숙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렇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 네이버 채널에서 '주간경향' 구독하기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