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도 태국도 만들었다.. '저렴이' 코로나 백신 임상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1. 4. 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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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카페]
태국 방콕의 마히돌대에서 임상시험 참가자가 태국에서 만든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태국 정부약품기구

지난달 15일 베트남 백신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코로나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연구소는 올 4분기 허가를 기대했다. 이어 태국과 브라질도 각각 22일과 26일 국산 코로나 백신의 임상시험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접종하고 있는 코로나 백신들은 특수 생산시설에서만 만들 수 있어 개발도상국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 베트남, 태국, 브라질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간 백신은 독감 백신을 만들던 방식대로 달걀에서 생산할 수 있어 개발도상국용 코로나 백신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신 개발 이끈 스파이크 단백질 연구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지 보도에 따르면 한 과학자가 누구나 쉽게 코로나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개발하고 아무 대가 없이 연구 결과를 세상에 공개해 저렴한 코로나 백신을 낳았다.

주인공은 텍사스대 화학과의 제이슨 맥렐란 교수이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할 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내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의 코로나 백신 개발을 이끌었다. 이후 이 스파이크 단백질을 달걀에서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이번에 개도국들에서도 코로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코로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나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이다. 한 번 약하게 바이러스를 경험한 인체는 나중에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바로 중화 항체를 생산해 바로 막아낼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코로나 백신은 모두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파이크를 인체 세포에 결합시킨 다음 안으로 침투한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물질인 RNA를 지방입자로 감싼 형태이고, 존슨앤드존슨과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스파이크 유전자를 인체에 해가 없는 다른 바이러스에 끼워 넣어 인체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미국 텍사스대의 제이슨 맥렐란 교수. 메르스 백신 연구에서 축적한 정보를 이용해 백신에 쓸 수 있는 안정적인 구조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개발했다./미 텍사스대

◇2015년 메르스 백신 개발이 출발점

맥렐란 교수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하자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 메르스 역시 이번 코로나와 같은 계열의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연구진은 바로 메르스 유발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주목했다. 문제는 스파이크가 계속 모양이 변한다는 데 있었다. 바이러스가 세포와 융합하기 전에는 튤립 모양이다가 융합 후에는 창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었다.

맥렐란 교수 연구진은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도 모양이 바뀌면 백신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융합 전의 스파이크에 결합하는 항체는 바이러스 감염을 잘 막아내지만 융합 후 형태가 바뀐 스파이크에 결합하는 항체는 그러지 못했다.

연구진은 스파이크 단백질이 형태가 바뀌지 않도록 고정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스파이크 단백질을 구성하는 1000여가지 아미노산 중 두 개를 프롤린 아미노산으로 바꾸면 백신의 스파이크가 계속 튤립 모양으로 고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튤립 모양으로 고정된 새 스파이크 단백질을 프롤린 두 개라는 의미로 2P라고 이름 붙였다.

2017년 연구진은 생쥐에 2P를 주입하면 메르스 감염을 막아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세상은 이 연구에 별 관심이 없었다. 메르스가 치명적이지만 전염성이 역해 큰 위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P 단백질은 2019년 말 메르스 유발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인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2(SARS-CoV-2)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맥렐란 교수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에 적합한 2P 스파이크를 새로 설계했다. 며칠 후 모더나는 이 설계대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2P를 만드는 설계도를 RNA에 넣고 지방입자로 감싼 백신이었다. 화이자와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 프랑스 사노피도 맥렐란 교수의 2P 스파이크를 도입해 백신을 만들었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개발한 헥사프로 스파이크 단백질.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에서 6개의 아미노산(붉은색과 파란색 점)을 바꿔 안정적인 구조로 만들었다./미 텍사스대

◇개도국에 무료로 백신 기술 이전

맥렐란 교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P 스파이크를 계속 연구해 100가지 새로운 형태로 만들었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의 지원을 받아 각각의 스파이크를 시험한 결과 기존 2P 스파이크에 프롤린 4개를 더 추가하면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지난해 5월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 이 단백질을 공개했다. 연구진은 프롤린이 6개라고 ‘헥사프로(HexPro)’라는 이름을 붙였다.

헥사프로는 2P보다 더 안정적이어서 열과 화학물질에도 잘 견뎠다. 맥렐란 교수는 백신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이 헥사프로로 자체 백신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랬다. 텍사스대는 개발도상국 80국의 기업, 연구소와 무료로 기술을 이전하는 협약을 맺었다.

동시에 비영리단체인 국제보건적정기술기구(PATH)의 브루스 이니스 박사 연구진은 개도국의 코로나 백신 생산을 늘리기 위해 독감 백신처럼 달걀로 생산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이칸 의대 연구진은 맥렐란 교수의 헥사프로 유전자를 닭에 감염되는 뉴캐슬병 바이러스에 끼워 넣었다. 이 바이러스는 달걀에서 쉽게 증식하고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했다.

연구진은 뉴캐슬병 바이러스와 헥사프로 스파이크를 붙여 이 백신을 ‘NDV-HXP-S’라고 이름 붙였다. PATH는 이 백신을 베트남의 독감 백신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지난해 10월 이 공장에서 만든 백신이 이칸 의대로 배송됐고, 연구진은 생쥐와 햄스터 실험에서 코로나 감염 차단 효과를 확인했다. 이제 베트남과 태국, 브라질에서 달걀로 생산한 NDV-HXP-S 백신의 인체 대상 임상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백신은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기존 독감 백신 공장에서 만들 수 있다. 생산량도 많다. 달걀 하나에서 5~10회 접종분의 백신을 만들 수 있다. 독감 백신은 달걀 하나로 1~2회 접종분만 만들 수 있었다.

베트남 백신연구소는 지난달 15일 백신 임상시험 계획을 밝히면서 올 4분기에 허가가 이뤄지면 내년부터 국산 코로나 백신을 접종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칸 의대는 멕시코 백신회사인 아비-멕스에 코 분무 방식의 스프레이 백신 기술을 이전했다. 이 회사도 곧 임상시험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과학자의 헌신이 세상을 구하는 길을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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