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55] 제주 종달리 ‘해녀의 부엌’
‘밥상을 앞에 두고 이렇게 울려서야 아무리 맛있는 밥인들 먹겠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공연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남편을 바다에 주고 더 이상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물질은 벗의 숨비 소리에 맞춰 한다 했던가. 선택 여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 벗을 따라 나섰다. 그런데 야속한 바다는 그 벗마저 데려갔다. 그래도 ‘살기 위하여’ 물질을 멈출 수 없었다. 종달리 해녀들과 젊은 청년 예술인들이 만나 생명을 다한 위판장을 무대로 꾸며 올린 ‘해녀의 부엌’이다.
“요즘 젊은 것들 물질 참 편하게 해”라며 늙은 해녀가 말을 꺼냈다. 열 살에 물질을 시작해 지금도 바다에 들어가는 현역 해녀다. 요즘 젊은 해녀들 “걷는 사람이 하나 없어. 오토바이 타고 물질하러 가지, 남편이 데리러 오지, 따뜻한 물로 목욕하지, 고무 옷은 또 얼마나 좋아” 하며 반세기 전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그때는 만삭에도 물질을 했고, 배 위에서 아이를 낳기도 했다. 소중이 하나 걸치고 물속에 들어가면 반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물질이 아니면 가족이 굶어야 할 형편이니 아이를 낳고 몸을 풀기도 전에 다시 나서야 했다. 제주도를 떠나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도 원정 물질을 다녔다. 물질이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삶이었고 신앙이었다.
옛날에는 우뭇가사리와 전복이 돈이 되었지만, 요즘 해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소라다. 제주 말로 ‘구젱기’라 한다. 특별 메뉴로 소라미역국, 소라회, 소라꼬지, 소라숙회가 올라왔다.<<b>사진> 소라는 긴 뿔을 바위틈에 내리고 거친 파도를 이겨내며 제주 바다를 지킨다. 해녀들이 테왁과 망사리를 짊어지고 제주 바다를 지키듯. 제주 소라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었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좋지 않다. 그래서 국내 소비 시장도 찾고 해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해녀의 부엌’을 기획했다. 요즘 권 할머니는 신이 났다. ‘오늘은 몇 명이 왔을까. 어떤 질문이 나올까’ 하며 기다린다. 이젠 ‘소라 물질’보다 공연장을 찾는 ‘고객 물질’이 즐겁다.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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