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부동산과 촛불민심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21. 4.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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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민생이고 욕망이고 정치이고 복마전이다. 대략 인구의 반은 부동산 유산계급이고, 나머지 반은 부동산 무산계급이다. 부동산 유산계급은 보유부동산의 위치에 따라 강남클래스와 비강남클래스로 나뉜다. 부동산은 가계자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자산증식 수단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가격의 등락은 전 국민의 관심사이고 정치적 시한폭탄이다.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부동산 무산계급이나 비강남클래스가 분노하고, 부동산가격이 내리면 부동산 유산계급이나 강남클래스가 불만스러워한다. 부동산가격이 올라서 보유세가 좀 오르면 ‘가진 것은 강남에 집 한 채뿐인’ 불쌍한 노인들에게 세금폭탄을 퍼붓는다고 난리이고 양도소득세를 낮춰 먹튀를 활성화하라고 아우성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자기 집은 임대하고 남의 집에서 전세 사는 현상이 흔하다 보니 10억원이 넘는 자기 집은 전세 놓고 그 보증금으로 남의 집에 전세 살거나 갭투자하면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라고 을로 코스프레하는 촌극도 종종 벌어진다. 관료들, 청와대 정책참모들, 국회의원들 중 강남클래스는 부동산 관련 세금이나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한없이 미적거리다가 민심이 폭발하면 그때야 ‘우리는 잘하려고 했는데’ 반대가 많아 일이 잘 안 되었다고 남 탓하기 일쑤다.

부동산 민심이 LH 사태로 폭발하면서 이번 보궐선거를 집어삼켰다. 이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후보들과 정당들은 무책임한 부동산 관련 공약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민심은 불공정 투기행위와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분노하고 있는데 지금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는 공약들은 하나같이 부동산 개발 공약이고, 규제 걷어내기 공약이다. 부동산가격 상승에 미적거리면서 핀셋규제로만 대응하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 규제와 세금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부 언론은 인기 지역 재건축은 공공이 아닌 민간토건족들이 해야 한다고 변죽을 울린다.

오늘 저녁이면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부동산이 다시 들썩거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해 본다.

첫째, 사람들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다른 복마전인 부동산시장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일시적 유불리나 정치동향에 따라 핀셋규제를 통해 ‘적절히 관리하려는’ 오만함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음을 상기하자. 경제학에 무지한 참모나 관료들의 ‘정치적’ 판단은 멀리하자. 경제학에 무지할수록 정치적 판단을 더 중시한다.

둘째, 부동산은 사는(live) 곳이기도 하지만 사는(buy)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투기적 수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정책결정 과정에서 강남클래스를 배제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부동산을 포함하여 모든 자산에 대한 공직자 자산백지신탁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본인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공직자는 없다.

셋째, 실거래가 100억원이 넘는 재벌들 저택에만 보유세를 핀셋방식으로 매기지 말고 실거래가 20억~30억원 이하의 부동산에 대해서도 보유세를 충분히 부과하자. 사실 전자는 투기의 대상도 아니다. 종부세가 상당히 강화된 2019년에도 종부세 납부 대상자 59만명의 54%가 50만원(월 4만원) 이하를, 70%가 120만원(월 10만원) 이하를 납부하였을 뿐이다. 이걸 세금폭탄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리고 국세청은 종부세 천분위 자료를 매년 인터넷에 공개하라. 그래야 국민들이 종부세 폭탄론의 실상을 알 수 있다.

넷째, 보유세나 양도소득세를 낮추려 하지 말고 소득이 없어 보유세나 양도소득세를 못 내겠다는 고령자에게는 장기 연부연납을 허용하자. 사망 시 자식들이 상속받기 전에 이자 붙여 밀린 세금을 회수하면 된다.

다섯째, 6월에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되면 금융권 대출뿐 아니라 전세보증금도 포함하여 총부채 상한제를 조속히 시행하라. 전세보증금도 부채로 간주하여 규제해야만 과도한 갭투자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금리가 오르거나 부동산가격이 내릴 때에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로 전파되는 경로도 차단할 수 있다. 그런 후에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에게는 총부채 상한을 완화해도 좋다.

정부와 여당은 이제 원점에서 지금까지의 정책방향과 성과를 되돌아봐야 한다. 촛불국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힘들게 국정을 이끌어오고 몇몇 분야에서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의 평가는 냉정한 것이니 억울해하지 마라. 선거는 이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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