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다"

문학수 선임기자 2021. 4. 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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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첫 작품 대면무대 올리는 문삼화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경향신문]

문삼화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 감독은 부임 후 첫 공연으로 연극 <정의의 사람들>을 무대에 올린다. 권도현 기자
재임 기간 극단 모토는 ‘지금, 여기’
23일 초연하는 ‘정의의 사람들’도
카뮈 원작을 이곳 이야기로 재창작
“국립극단과 차별화 전략이기도”
도망치듯 미국 유학 떠나 연극 전공
뉴욕 소극장서 궂은일로 경험 쌓아
귀국 후 유씨어터 거쳐 뚱딴지 창단
“연극인에겐 뚱딴지 정신이 중요해”

서울시극단 문삼화 예술감독(54)이 부임 이후 첫 공연을 올린다. 알베르 카뮈의 <정의의 사람들>이다. 예술감독 부임 일자는 지난해 6월 초였으나 코로나19 사태로 대면공연을 올리지 못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다가 ‘가뭄 끝의 단비’처럼 선보이는 공연이다. 최근 서울시극단 사무실에서 만난 문 감독은 “그동안 공연 여러 편을 리허설까지 다 마치고 영상으로만 선보여 매우 답답했다”고 말했다. 유일한 대면공연으로 신유청 연출의 <와이프>를 나흘간 선보였으나 이는 서울시극단이 2019년 초연했던 작품의 앙코르였으니, “사실상 <정의의 사람들>이 첫번째 작품”이라는 것이다.

예술감독의 첫 작품은 출사표와도 같다. 문 감독은 “작년 8월부터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시다시피 서울시극단은 세종문화회관의 산하 예술단체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세종문화회관은 늘 ‘광장 한복판의 극장’이었습니다. 중학교(창덕여중)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항상 그런 이미지로 다가왔죠. 한국현대사가 응축된 곳,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가 분출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술감독 부임 직후에 첫 작품으로 ‘광장의 의미’를 묻는 연극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정의의 사람들>은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치적인 작품인데, ‘지금 이곳’의 연극으로 완전히 해체해 재구성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서울시극단의 모토는 ‘지금, 여기’ ”라는 것이 문 감독의 설명이다.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을 공연하더라도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재창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의의 사람들>도 상당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황제의 숙부인 세르게이 대공을 암살하려는 젊은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골격만을 남겼을 뿐, 원작에는 없는 새로운 인물과 집단들이 대거 등장한다. 예컨대 안중근 의사 같은 한국현대사의 인물들을 비롯해 지금 광장에서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다양한 집단들이 연극 속에서 출몰한다.

어떤 이들은 다양한 목소리의 분출 때문에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애초에 그런 것이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광장’도 마찬가지다. 질서정연하고 일사불란한 광장은 전체주의가 만든 ‘체제의 선전장’일 뿐이며, 애초 광장이란 비효율적이고 시끄러운 갑론을박의 장(場)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연극”을 첫 작품으로 올리는 문 감독은 극작가 김민정과 드라마투르그 배선애에게 공을 돌리면서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번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문 감독은 기존의 스토리를 해체하고 뒤집는 작업, 그리고 ‘지금 여기’를 극단의 모토로 설정한 이면에는 “ ‘국립극단과의 차별성’이라는 나름의 고민도 자리해 있다”고 털어놨다. 알려져 있다시피 국립극단과 서울시극단은 한국에서 국공립극단을 대표하는 두 곳으로 손꼽힌다. 문 감독은 이를 뉴욕의 미술관에 비유했다. “뉴욕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미술관이 두 곳 있습니다. 모마(MOMA·Museum of Modern Art·뉴욕 현대미술관)와 구겐하임이죠. 두 곳의 컬렉션은 굉장히 다릅니다. 모마에는 근대 작품들이 많고 구겐하임은 20세기 이후의 현대 작품들이 중심이죠. 국립극단을 모마에 비유한다면 서울시극단은 구겐하임 미술관에 가깝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희는 구겐하임처럼, 새로운 이야기와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뉴욕은 또한 문 감독이 청춘의 한때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은 뒷전이었고 교내 동아리 ‘극예술연구회’에서 4년을 다 보내다시피 했다. 졸업 후 3년간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이대로 소진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미국 아이오와로 도망치듯이 떠났다”고 했다. “스물여덟 살 때였죠. 원대한 꿈을 품고 떠난 유학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도망친 거였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저는 정말 행복했죠. 의상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연극을 전공했거든요. 날마다 숨쉬는 공기마저 향긋할 정도였으니까요. 학교를 마친 다음에, 뉴욕의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1년간 일하다가 1999년에 돌아왔죠.”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소극장에서 그는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극장 경험’을 쌓았다. 국내로 돌아온 이후, 극단 ‘유씨어터’의 연출부를 거쳐 2009년 극단 ‘뚱딴지’를 창단했다. “그냥, 뚱딴지 같은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그는 후배들에게 “우리 같은 연극쟁이들한테는 즉흥과 충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뚱딴지의 정신’인 셈이다. 그동안 연극을 해오면서 “단 한번도 내적 갈등이 없었다”는 그는 “지금도 내가 연극쟁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기쁘고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서울시극단은 <정의의 사람들>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23일부터 5월9일까지 공연한다. 이어서 <한여름밤의 꿈>을 문 감독이 직접 연출해 5월21일부터 6월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선보인다. 가을에는 <천만 개의 도시>(전성현 작·박해성 연출), <드리밍 팝>(황이선 연출),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원작·김한솔 각색), <등장인물>(신재 작·연출) 등이 예정돼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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