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증세 땐 기업 떠날라'..미 "법인세 하한선 공동 대응하자"
[경향신문]
옐런 “30년 이어진 법인세 ‘바닥 경쟁’ 멈춰야…G20과 협력”
‘해외 이익 차액 징수’ 제안…바이든 “기업 경쟁력 해 없어”
집권 초 ‘큰 정부’ 승부수…공화당·기업 설득, 외교전 ‘난제’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증세 드라이브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에 나선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나홀로 증세’로 인한 기업의 해외 이전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을 설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세금을 올리고 국제적으로 감세에 제동을 거는 ‘쌍끌이 전략’인 셈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연설에서 “30년간 이어진 각국의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면서 “법인세율 하한선을 설정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 설정은 바이든 정부의 증세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가 법인세를 과도하게 내리지 않는다면 미국에 기반한 기업들이 조세회피를 위해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거나 인수·합병을 할 유인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옐런 장관은 “법인세 하한선 설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다른 주요 경제국들이 함께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기업들이 조세회피처 국가로 이익을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나라들도 같은 조치를 하도록 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가 10.5%로 낮춘 기업의 해외 발생 이익에 대한 최저한세를 21%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 기업이 외국에서 활동해 올린 소득에 대해 해당 국가에 낸 세율이 21% 이하일 경우 차액을 미국에서 징수한다는 것이다. 국가별 합산 방식인 해외 발생 이익에 대한 과세를 국가별 과세 방식으로 전환해 장부상 세원 이전을 통한 조세회피 방지 방안도 포함됐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일자리 투자”라고 자평한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법인세 인상 계획을 밝혔다. 2017년 트럼프 정부가 35%에서 21%로 인하한 법인세를 28%로 올려 인프라 건설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중으로 1조달러가 넘는 규모의 인적자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연소득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연간 자본소득 100만달러 이상에 대한 자본소득세 인상 등 증세 방안도 추가로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법인세율 인상이 기업들의 경쟁력을 해칠 것이란 지적에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법인세는 35%였다가 현재 21%까지 내려갔다”면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를 위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28%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되는 증세안을 집권 초기에 공세적으로 들고나와 승부수를 던졌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코로나19 위기로 ‘큰 정부’의 필요성이 증가한 상황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증세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증세 현실화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과 경제계는 물론 민주당 중도파까지 설득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G20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상대로 법인세 하한선 설정을 위한 외교전을 강화하겠지만 합의에 이를 것이란 보장이 없고 합의해도 실행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백악관은 증세 반대 진영을 향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면서 시급한 인프라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아이디어 제시를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화당이 증세안을 끝내 반대할 경우 상원에서 과반 통과가 가능한 예산조정권을 발동해서라도 반드시 처리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증세가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등의 경고처럼 증세 이후 경제 실적이 나빠진다면 거대한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바이든 정권의 명운을 건 도박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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