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아파트가 공시가격 15억이라고? [팩트 체크]

송진식·이호준 기자 2021. 4. 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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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제주 지자체장 "재조사" 요구
현실화율을 '실거래가 대비 공시가격'으로 잘못 해석
'숙박장을 공동주택 산정'도 틀려..업소가 '불법 전용'

[경향신문]

최근 일부 매체들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정부의 잘못된 산정기준으로 인해 폭등했다면서 보도한 기사의 제목들. 이 같은 보도에 여론이 악화하자 6일 국토교통부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이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인상폭을 기록한 뒤 공시가격이 적절하게 산정됐는지를 놓고 정부와 일부 지자체 간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5일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몇몇 사례를 제시하며 “공시가격 산정에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고 나선 뒤부터다.

국토교통부는 같은 날 해명자료를 배포한 데 이어 6일 긴급 브리핑에서 이들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양측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여부를 떠나 그간 ‘깜깜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공시가격 산정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조은희 “현실화율 과다” vs 국토부 “거래가격 의심”

조 구청장은 “(공시가) 현실화율이 90%를 넘는 곳이 다수 확인됐다”며 서초동 A아파트, 우면동 B아파트, 잠원동 C아파트, 방배동 D아파트 등 4곳의 경우 현실화율이 108~126%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일단 틀렸다. 공시가 현실화율이란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을 의미한다. 조 구청장은 이를 ‘실거래가격 대비 공시가격’으로 해석했다. 실거래가는 간혹 금액을 잘못 적은 ‘오기’의 사례도 있고, 세금회피 목적의 다운계약 등 ‘이상거래’ 사례도 있어 시세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국토부는 서초구가 제시한 A아파트 등의 실거래가가 유독 낮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서초구는 A아파트(80.52㎡)가 2020년 10월 12억6000만원에 거래됐지만 공시가격이 15억3800만원으로 훨씬 높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동일 평수는 올 1월7일 17억원에 거래됐고, 80.53㎡는 같은 달 하반기에 2건이 각각 17억~18억원 선에서 거래됐다. 국토부는 “A아파트의 전세가액(11억원) 등을 볼 때 12억6000만원이 적정 시세가 아니다”라며 “이상거래가 아니었는지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서초구 관계자는 “올 1월에 거래된 가격은 내년도 공시가격 산정에 참고해야 하므로 제외하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잠원동 C아파트(117.1㎡)의 경우 작년 6월 17억3000만원에 거래됐고, 공시가격은 18억7000만원으로 산정돼 서초구가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준공연도와 면적이 거의 같은 인근 아파트들은 작년 4분기에 대부분 25억원 수준에서 거래됐다.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그 근처 단지들이 가격이 비슷비슷하지만 C아파트가 위치나 교통이 나아 1억원 정도 오히려 가격이 더 높다”고 밝혔다.

■ 원희룡 “서민 부담 늘어” vs 국토부 “99%가 재산세 줄어”

원 지사는 “제주도 납세자의 6분의 1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0% 초과해 상승했다”며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빌라의 공시가격이 집중적으로 상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제주도 공동주택의 51.2%는 공시가가 하락했고, 공시가 3억원 이하 주택은 52.8%가 공시가가 하락했다”며 “제주도는 주택 99%가 공시가 6억원 이하라 1주택자는 올해 재산세 부담이 줄었다”고 밝혔다.

원 지사가 “공시가 오류의 대표적 사례”라고 제시한 제주의 한 아파트의 경우 ‘1·4라인’은 공시가가 올랐고, ‘2·3라인’은 공시가가 내린 게 문제가 됐다. 1·4라인은 ‘33평형’, 2·3라인은 ‘52평형’이다. 국토부는 “해당 아파트들의 실거래가와 시세를 보면 지난해 중형인 1·4라인은 가격이 올랐고, 대형인 2·3라인은 가격이 내렸다”며 “시세에 변동이 생기면서 같은 아파트라도 라인별로 공시가가 달라진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원 지사가 “숙박업소 11곳에 대해 공동주택으로 공시가격을 산정했다”고 주장한 것에도 국토부는 반박했다. 해당 업소 11곳 중 10곳은 본래 등기부에 ‘연립·다세대주택’으로 등록돼 있는데 업소에서 건물을 용도와 다르게 ‘불법 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나머지 1곳은 숙박업소가 맞아 산정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건물의 불법 용도를 감시하는 건 지자체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 ‘깜깜이 공시가’ 문제 개선해야

조 구청장 등이 공시가격 문제를 공개적으로 들고나온 것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결국은 공시가 문제보다는 지역 내 세금부담 상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나선 것 아니냐”며 “공시가 제도가 물론 허점이 있긴 해도 이렇게 정치적으로 주민들을 선동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간 산출 근거 및 과정 등을 놓고 문제가 제기됐던 현행 공시가격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가 제도의 문제는 한국부동산원이나 국토부 외에는 누구도 공시가가 어떤 근거로 어떻게 산출되는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올해처럼 공시가가 급등하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불만과 의혹을 품기 쉽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제도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산정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하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이호준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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