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으로 삶의 빛 얻어.. 살아 있는 한 쓸 것"
교직 접고 전업작가 투신
토굴 들어가 쓰고 또 쓰고
산돌 키우듯 문학에 매진
꿈에 취한 인생역정 담아
맨부커賞 수상한 딸 한강
"글쓰기는 아버지의 종교"
어머니는 아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마다 태몽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했고, 그는 이를 “여느 사람과는 다른 특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나 신탁처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한승원(82)이 소설가로 살아온 일생을 정리한 자서전 ‘산돌 키우기’(문학동네)를 펴냈다. 한 작가는 “나의 마지막 진술이 될지도 모른다”며 어머니의 태몽 이야기부터 고향 장흥에서 산돌 키우듯 문학의 꿈을 지키고 있는 요즘 모습까지 자신의 삶과 문학을 옹골차게 담았다.
한 작가는 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표제 ‘산돌 키우기’의 의미를 묻자 “열 살 무렵 유리 기둥이나 석영 기둥처럼 아름답게 클 것이라고 상상하고 뜬 물을 주면서 산돌을 키웠다. 되돌아보면 내 인생 역시 산돌 키우기와 같은 인생이었고, 지금도 그런 꿈에 취해 산다”며 인생 역정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어릴 시절, 한승원은 할아버지를 통해 괴짜 선비 이야기나 간사한 여우 이야기, 여의주를 삼킨 소년 등 이야기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 세계에는 지혜와 통찰뿐만 아니라 인간 본원의 삶과 모럴(윤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서라벌예대에서 김동리의 ‘이야기의 힘’, 서정주의 ‘역설의 묘’, 박목월의 ‘형상화’ 등 소설과 시를 배웠고 송기숙과 이문구, 박상륭 등 선후배들과 문학의 향연에 젖어들었다. 마침내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3년 동안 김 양식을 한 경험을 살린 단편 ‘목선’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본격 데뷔했다.
“촌놈이 왜 서울 것들 흉내를 내는 거야.” 서울의 어느 술자리에서 당시 ‘월간문학’ 편집자였던 이문구가 등단 뒤 시류를 좇아 군사독재 정권의 엄혹한 통치를 풍자한 작품을 즐겨 쓰던 그에게 쓴소리를 했다. “너한테는 바다가 있지 않니? 니 ‘목선’ 같은 소설을 써라. 다른 친구들은 바다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몰라서 못 쓴다.”
한승원은 이후 소설집 ‘안개바다’ ‘폐촌’ ‘포구의 달’ 등과 장편 ‘해일’ ‘해산 가는 길’ ‘멍텅구리배’ 등 다채로운 바다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창작했고, 특히 1980년 교직을 그만두고 상경해 전업 작가로서 ‘불의 딸’ ‘아제아제 바라아제’ ‘동학제’ ‘원효’ ‘추사’ ‘다산’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이야기를 통해 삶의 빛을 얻고, 순전히 이야기의 힘으로 살아왔음을 증명해주는” 한승원의 자서전은 시 같기도 하고 에세이, 콩트 같기도 하지만 그 모두를 융합한 새로운 형식 같기도 하다. 각 편마다 손에 잡힐 듯 서술하거나 묘사함으로써 영상미도 드러나고, 글이 길지 않아 손이 가는 대로 시선이 가는 대로 읽을 수도.
한 작가는 서문에서 “아들의 등에 업혀 가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귀가할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돌아갈 길 굽이굽이에 솔잎을 따서 뿌리듯 이 글을 쓴다”고 말했다. 만약 책의 목적이 자식에게 보내는 귀로의 나침반 또는 결과적으로 한 방울의 눈물을 희망한 것이었다면 실패하진 않은 듯. 왜냐하면 딸 한강이 자서전 말미에 붙인 발문에서 밝힌 고백은 그것의 유력한 증거처럼 해석돼서다.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어떤 경우에도 문학을 삶 앞에 두지 않겠다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반짝이는 석영 같은 이 페이지들 사이를 서성이고 미끄러지며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나 척박한 흙을 밀고 그가 기어이 꽃피었는지. 그걸 가능하게 한 글쓰기가 그의 종교였음을. 그토록 작고 부드러운 이해의 순간이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살아 있는 한 쓸 것이고, 쓰고 있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며 아직도 해산토굴 앞에서 ‘산돌’을 키우고 있다는 한승원. 스스로를 구원했고 아직도 키우고 있다는 그 산돌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얼마만큼 컸을까, 한국문학의 대지를 얼마나 밝혀 왔을까. 산벚꽃은 바람 속에서 하늘거리고 봄은 태양을 향해 달리고 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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