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몰린 자영업..데이터로 살펴본 서민경제의 주름살
"매출이 저조하고 이익이 안 나다 보니 이미 폐업했습니다." (2020년 5월 식당 인허가받은 덮밥집)
"손님이 거의 없어요. 저는 종업원인데, 장사가 안돼서 요즘 가게 주인도 안 나와요. 가게 내놓은 것 같던데..." (2020년 12월 말 식당 인허가받은 콩나물국밥집)
"됐어요.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전화 끊겠습니다." (2020년 4월 식당 인허가받은 분식당)
취재진이 최근 1년 사이 문을 연 소규모 식당을 골라 무작위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눈 대화의 단편들입니다. 방송국 취재진에게 골목 상권 식당에 대한 취재 섭외는 보통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YTN의 취재에서는 그 상황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자영업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간단한 촬영 섭외가 연이어 불발되면서, 영세 식당들의 팍팍한 현실과 그들의 고충을 더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업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벌써 폐업을 고민하고 있거나, 개업 1년 만에 사실상 영업은 종료하고 공식 폐업 신고만 하지 않은 '실체 없는 식당'도 줄줄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촬영 허락을 받아 방문해본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김밥집은 글자 그대로한가했습니다. 점심에 들른 사람이라고는 취재진 외에는 전화 주문 후에 포장으로 김밥을 받아간 손님 2명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지금 매출이 지난해 4월 문을 열었을 때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라는 주인의 말이 실감이 갔습니다.
"1월, 2월은 죽다 살았다니까요. 그렇게 계속 적자니, 세가 6개월도 더 밀렸는데… 그렇다고 폐업은 쉬워요? 기물 다 중고처리해야 하고 결제 단말기도 3년 계약인데, 쓰지도 않으면서 돈은 계속 내야 하는 상황인데. 권리금 문제도 있고. 당장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할 거냐는 문제도 있어서 쉽게 (폐업을) 못하는 거죠." (최정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김밥집 운영)
<코로나 여파로 전국 음식점 신용카드 매출 '뚝'>


이 정도로 평균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면, 앞서 언급한 1인 운영 점포가 아닌, 인건비 등 운영비가 많이 드는 다른 음식점의 운영난은 더욱더 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장이 줄줄이 문을 닫았을 것 같지만, 데이터 분석 결과로는 전혀 다른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점 업계만 놓고 보면 창업못지 않게 폐업도 줄었습니다. 업황이 극도로 나쁘면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을 것이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결과입니다.

급전직하한 식당 카드 평균 결제액, 그러나 문 닫는 식당은 많지 않은 폐업 숫자. 그 모순적인 간극에서 우리는 폐업하고 싶어도 쉽게 폐업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한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사실상 문을 닫았지만, 데이터에는 잡히지 않는 업소들의 숨겨진 이면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곪아가고 있지만, 표면상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서민경제의 사각(死角)인 셈입니다.
<140개 업종의 코로나 기상도>
YTN 데이터 저널리즘팀은 코로나19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전국 190개 업종 개· 폐업 정보가 담긴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약 824만 건을 분석했습니다. 1년 사이 개·폐업건 수의 변화가 10곳 미만이었던 50개 업종은 제외하고, 남은 140개 업종의 개·폐업 현황을 시각화했습니다. X축에는 2019년 대비 2020년의 창업 성장률을, Y축에는 폐업 증가율을 사분면에 표시하자 업종별 상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DVD방 (비디오물감상실업), 골프연습장, 피시방 (인터넷 컴퓨터게임 시설 제공업), 단란 및 유흥주점업 등 1년 사이 창업이 줄고 폐업이 늘어난 업종도 있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폐업이 줄어든 업종도 많았습니다.

먼저 4분위 차트의 8시 방향에 점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음식점업처럼 창업도, 폐업도 감소한 업종으로 한마디로 창업도 예년보다 머뭇거리고, 폐업도 주저했다는 얘기입니다. 업종 기상도 '날씨 흐림'에 해당하는 영역입니다. 식당 외에도 제과점과 당구장, 이용업, 미용업, 세탁업 등 자영업종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폐업은 예상보다 많지 않지만, 수면 밑에서는 문제가 날로 악화하고 있는 상황, 즉 데이터의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지점입니다.
4분위 차트의 10시 방향에는 코로나로 받은 충격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업종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즉 1년 사이 예년에 비해 창업은 덜 하고 폐업은 더했던 업종입니다. 업종 기상도 '날씨 매우 흐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역에는 붉은 점들이 많습니다. 즉 사업장 총 숫자가 1년 사이 감소한 업종들입니다. 특히 노래방과 유흥주점이 나란히 배열됐는데, 노래방의 폐업 증가율이 더 높고, 그다음이 유흥주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음식점은 모임이나 회식의 1차 장소, 주점이 2차, 노래방은 2차 혹은 3차 장소로 선호한다는 점에서 보면, 음식점에서의 5인 이상 집합 제한이 음식점- 주점- 노래방의 연결 고리를 따라 파장이 더 커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배달 주문이라는 비대면 영업 전략이 가능했던 식당업과 달리 해외여행 제한의 직격탄을 맞아 더욱 위축됐던 업종이 있으니 바로 여행업계입니다. 한국 여행업 협회가 지난 2월에 공개한 '전국 여행업체 실태 전수조사' 보고서를 보면 그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8월까지 폐업을 신고한 여행사는 202개였지만, 이와 별도로 폐업 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폐업 상태인 업체도 3,952개에 달했습니다. 여행사 등록 상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전화번호가 틀리거나, 사업장의 주소를 방문해도 여행사가 없는, 즉 대표도 직원도 잠적하고 사무실도 사라져버린 여행사가 4천 개 가까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전수 조사 대상이 된 17,664개 여행사 중에 22%를 차지합니다. 코로나19가 처음 닥쳤을 때만 해도 설마 이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하루하루를 버텼을 소상공인들. 그들에게 구명정 역할을 해주고자 지급된 것이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지원이었습니다. 당장의 영업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절실한 지원책이긴 하지만, 임시적인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현실의 문제는 또다시 누적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그 지원이라는 게 대출이란 말이에요. 그 대출은 사업을 영위한다는 조건에서 나온 건데, 폐업하면 너 지금 사업 안 하니까 가져간 대출금 반환하라는 상황이 되고, 이것 때문에도 폐업을 못 하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 지금 임대료 낼 능력이 없는데, 천만 원, 3천만 원 비용을 어디서 낸다는 거예요. 그럼 좀 버텨보자 신규 임차인 구해 권리금이라도 받아 해결해보자
이런 심정으로 상황이 끌어진 거예요."(강종헌 K 창업 연구소장)
<"빚지고 영업한다"… 쌓여가는 리스크>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빚을 지며 사업을 유지하는 업소가 많다면, 전체적인 대출금 변동 폭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았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 산업별대출금 통계에 포함된 17개 산업 모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기 시작한 작년 2분기에 총대출금이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점업은 지난 한 해 동안 총대출금이 약 1.3조 원만큼, 재작년 대비 약 20% 이상 증가했습니다. 증가한 금액의 약 20% 만이 시설 설치 등 장기 투자 목적으로 빌리는 시설자금이고, 나머지 80 %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빌리는 운전자금이었습니다.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업소보다 당장 사업장의 유지를 위해 돈을 빌려 생존하는 업소가 훨씬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 형태별로 살펴보면, 법인 음식점(보통 연 매출 8-10억 원 이상)과 비법인 음식점 간에 대출금 증가 폭이 뚜렷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법인음식점 대출금은 9% 증가했지만, 비법인음식점 대출금은 3.1조 원에서 3.8조 원으로, 2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음식점이 부채 부담을 더 짊어지게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일부 업종에서는 예상보다 폐업이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자영업이 잘 버티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자영업 운영난이 지속할 경우 거시 경제와 금융권까지 흔드는 잠재적인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대출금의 이자 상환도 지금 유예가 되는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다 갚아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갚을 시점이 됐을 때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됐을 경우면, 금융권 전반적인 어떤 문제가 될 수 있고, 지금의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경제 전반의 리스크는 커진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폐업과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소상공인들에게는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 그리고 그 이후의 정상화는 너무 먼 훗날의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벼랑 끝까지 몰린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일일이 가늠하기에는 한계가 많은 데이터이지만,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문제를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공개합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전국 140개 업종 창업-폐업 증가율' 시각화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대출금 통계를 바탕으로 제작한 '산업별 대출금 추이' 시각화는 아래의 인터랙티브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 함형건 · 최운
데이터 분석 · 시각화 : 최운
그래픽 디자인 : 박지원
★ 인터랙티브의 원들을 클릭하시면, 해당 업종 주변에 분포한 업종들을 확대한 분포도가 나타납니다. 각 원 위에 커서를 대면 팝업창을 통해 해당 업종의 창업과 폐업 추이 차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뜨지 않을 경우에는 인터넷 주소창에 http://bit.ly/ytn_coronavir us_business_impact 라고 입력하시면 됩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관련 방송 리포트 (2021년 4월 3일 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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