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보컬리스트 하윤주의 피아노·국악 합친 첫 콘서트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큰 추위로 견뎌낸 나무의 뿌리가 봄 그리운 맘으로 푸르다. 푸르게 더 푸르게 수만 잎을 피워내 한 줄기로 하늘까지 뻗어라.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대금과 가야금 등의 전통 가락에 어우러진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한 정가(正歌) 보컬리스트 하윤주(37)의 목소리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그는 코로나19가 끝나고 희망이 오길 바라며 신문희의 '아름다운 나라'를 앙코르곡으로 불렀다.
정가는 판소리와 민요 등과 달리 일반인에겐 생소한 국악 장르다. 선비나 사대부 등 지식인 계층에서 주로 불린 노래로, 서양의 오페라와 비교된다. 노래의 형식이 잘 정돈돼 담백하고 우아한 느낌을 전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는 정가와 판소리, 우시조, 여창가곡 등 우리 음악에 클래식을 접목한 색다른 무대가 펼쳐졌다. 하윤주의 이름을 내건 첫 단독 콘서트 '바야흐로, 봄이었다'에서다.
하윤주는 이날 피아니스트 최희원(34)을 게스트로 초청했다. 최희원은 하윤주의 첫 정규 앨범 '추선'(秋扇)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지만, 실제 무대에 같이 선 것은 처음이다.
두 사람은 정가 '3월에 오는 눈'과 '사철가'를 비롯해 음악극 '적로' 가운데 '세월은 유수와 같이'와 '두 눈을 딱 감고' 등을 선보였다. 최희원은 관객들에게 드뷔시의 '달빛'도 선물했다.
중간중간 해설을 곁들이며 무대를 이끈 하윤주는 "지난해 9월 나태주 시인 등과 작업한 앨범 '황홀극치'를 내고 음악회를 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세 번 모두 취소됐다"며 "새로운 시간으로 채워가야 했는데 공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부산국악원 성악단 단원 정윤형(25)도 게스트로 참여했다. 그는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을 맡아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는 등 무대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윤주와 2017~2019년 '적로'에 출연한 그는 이 무대에서는 '두 눈을 딱 감고'를 함께 선보였다.
공연 직후 연합뉴스와 만난 하윤주는 "정가는 여백의 미가 많은 음악인데, 피아노의 풍부한 화성이 빈 곳을 채워줄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피아노를 좋아해 악보를 보고 기본적인 건 연주할 수 있다는 그는 국악기와의 협업으로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내가 배운 노래를 바탕으로 현대에 어울리는 정가를 부르고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게 목표"라며 "물도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것처럼 활동 영역을 넓혀 대중과 소통하면서 정가를 잘 담아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윤주는 코로나19로 공연이 많이 취소되자 오히려 개인 기량을 좀 더 쌓는 시간으로 활용하자고 생각하며 연습에 매진했다고 했다. 그는 로맨스 판타지 국악 뮤지컬 드라마 '구미호 레시피'(2부작)와 KBS 다큐멘터리 '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 등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을 쌓아가는 음악극이나 정가극과 달리 드라마는 촬영 스케줄에 따라 극 중에서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해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며 "발성과 소리에 대한 표현법이 달라 목소리의 톤이나 색깔 등에 관해서도 많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하윤주는 지난달 초 국립합창단의 삼일절 기념 창작 칸타타 '나의 나라'에 정가 파트로 출연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국악과 합창의 협업이 많지 않은데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신선하고 좋았다"며 "백범 김구 선생 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애국심이 높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무용과 연기를 배우는 등 자기 계발 차원에서 준비하다 보니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음악극이든 드라마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다가온다면 꾸준히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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