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건드리지마” 요르단 왕비 나섰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4.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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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출신 누르 왕비 “함자 왕자 쿠데타설은 악의적 비방”
누르 왕비/로이터 연합뉴스

중동 국가 요르단에서 압둘라 2세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41) 빈 후세인 왕자가 지난 3일부터 사실상 가택연금을 당한 가운데 함자 왕자의 어머니인 누르(69) 왕비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누르 왕비는 4일(현지 시각) 트위터에 “악의적인 비방에 당하는 죄 없는 희생자를 위해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기를 기도한다”며 “신이 그들을 축복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썼다. 아들 함자 왕자에 대한 ‘쿠데타 연루설’이 악의적 비방이라는 항변이다. 요르단 정부는 함자 왕자가 외세와 결탁해 압둘라 2세의 통치 체제를 뒤흔들려고 시도했다는 입장인 반면, 함자 왕자 측은 근거 없는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진실 공방으로 흐르고 있다. 함자 왕자는 4일 트위터를 통해 “그들이 내게 ‘외출과 트위터,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가택연금 조치에 반발했다.

함자 왕자, 압둘라 2세 국왕

누르 왕비는 미국인에서 중동 왕실의 일원이 된 보기 드문 이력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 배우였다가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를 연상시킨다. 누르 왕비는 워싱턴DC에서 시리아계 아버지와 스웨덴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리자 할라비였다. 아버지 나집 할라비는 케네디 행정부 때 연방항공국장을 지낸 뒤 1969년부터 3년간 팬아메리칸항공 CEO(최고경영자)를 지내 이민자 후손으로서 성공 신화를 썼다. 유복하게 자란 누르 왕비는 프린스턴대에서 건축학·도시공학을 전공해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린스턴대 여성 아이스하키팀이 만들어졌을 때 창단 멤버로 선수 활동을 했다.

요르단의 누르 왕비가 2010년 프랑스 칸 영화제에 나타났을 때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아버지의 뿌리였던 중동에 관심이 많았던 누르 왕비는 1970년대 로열요르단항공에서 시설 설계 담당자로 일하던 중 후세인 1세를 만났다. 1977년 후세인 1세가 셋째 아내와 사별하자 1978년 그와 결혼해 넷째 아내가 됐다. 함자 왕자를 포함해 2남 2녀를 낳고, 후세인 1세가 1999년 숨질 때까지 곁을 지켰다. 누르 왕비는 결혼과 동시에 이슬람 왕실의 삶을 받아들였다.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이름도 누르 알 후세인으로 바꿨다. 누르는 아랍어로 ‘빛’이란 뜻이다. 현 국왕의 어머니는 후세인 1세의 둘째 아내로 영국인이었고, 두 사람은 이혼으로 결별했다.

누르 왕비가 아들 구하기에 나섰지만 상황은 압둘라 2세 국왕 쪽이 훨씬 유리하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둘라 2세를 지지한다고 밝힌 데 이어, 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쿠웨이트·오만 등 인근 우방국이 일제히 압둘라 2세 지지 입장을 내놨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부총리는 “함자 왕자가 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요르단을 탈출할 때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일부 중동 언론은 함자 왕자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결탁했다고 보도했다.

누르 왕비와 아들 함자 왕자. 압둘라 2세가 국왕으로 취임한 1999년 모습이다./AFP 연합뉴스

압둘라 2세는 1999년 왕에 오르는 대관식 때 의붓어머니인 누르 왕비를 초청하지 않는 등 거리를 뒀다. 압둘라 2세가 즉위하면서 함자 왕자가 갖고 있던 왕세자 지위를 2004년 빼앗은 뒤 2009년 아들 후세인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도 누르 왕비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현지에서는 압둘라 2세가 함자 왕자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는데, 부친인 후세인 1세가 가장 의지한 사람이 누르 왕비였다는 점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요르단 국민에게 누르 왕비에 대한 이미지는 엇갈린다. 일부는 아직도 ‘미국인 손님’으로 여기며 국모(國母) 대우를 하지 않고, 일부는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여성 리더라며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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