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첫 독자'라는 기쁨

곽아람 기자 2021. 4. 6.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며 느끼는 자그마한 기쁨 중 하나를 들자면, ‘첫 독자'로서 누리는 기쁨을 들겠습니다. 문화부 기자의 특성상 외부 필자 원고, 즉 외고를 많이 받게 됩니다. 고민해 어렵게 섭외한 원고를 받아 처음 읽기 시작했는데 원고가 기대 이상으로 좋아 읽는 즐거움이 느껴질 때, 무엇보다 필자가 성실할 때 일의 보람이랄까, 기쁨이랄까 그런 충만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기자의 본업은 분명 쓰는 일일진대, 이런 외고를 받은 날이면 출판 편집자에 빙의해 ‘내 기사 따윈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제발 이 글이 널리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지난주 Books 지면 ‘당신의 책꽂이' 코너에 소개한 천문학자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의 책 추천글 ‘우주가 궁금할 때 읽는 책 5′도 그런 즐거움을 줬던 외고입니다. 날이 따스해지고 야외에서 밤하늘을 관찰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자 천문학 책이 쏟아지는데 심 연구원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는 그 중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책이죠. 천문학책을 추천받으면 좋겠다 싶어 의뢰했는데 천문학책은 물론이고 소설부터 그림책까지 그 독서의 다채로움과 심혈을 기울여 책을 고른 성실함에 살짝 감명받았습니다. 추천서 목록에 ‘나의 서울대 합격수기'라는 책이 있길래 ‘대체 이건 뭔가. 웬 수험서가…' 하고 물어보니 “달에 사는 아이가 지역균형선발로 서울대 가는 이야기”라는 친절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나의 서울대 합격수기

[당신의 책꽂이] 천문학자 심채경의 우주가 궁금할 때 읽는 책 5

‘글 쓰는 트레이더'로 불리는 김동조 벨로서티 인베스터 대표가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사계절)를 소개한 ‘토요일엔 에세이’ 원고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이야 많지만 글 잘쓰면서 성실하기까지 한 사람은 드물지요. 성실한 필자가 묵직하고 성실하게 한 글자 한 글자의 조탁(彫琢)을 고민하며 쓴 원고를 받아보면 장인(匠人)을 마주대했을 때와 비슷한 즐거움이 있어 좋습니다. 필자는 “봄에는 꼭 도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원고를 읽으면서는 저 역시나 벚꽃 흩날리는 4월의 도쿄로 무척 떠나고 싶었습니다.

[김동조의 토요일엔 에세이] 4월의 도쿄, 친일과 극일

매주 지면을 만들며 동료들에게 책 리뷰를 부탁하게 됩니다. 일도 많은데 가욋일을 얹는 게 아닌가, 항상 미안해하면서 부탁하는데 그렇게 받은 리뷰에서 ‘아, 정말 즐거워하며 읽었구나'라는 감정이 느껴지면 그 또한 즐겁습니다. 선배 기자에게 부탁한 ‘전략가, 잡초'(더숲) 책 리뷰가 너무 재미 있어서 읽으며 감탄하고 있는데 마침 필자로부터 “이 잡초 책, 정말 흥미진진하다”는 문자가 날아와 기뻤습니다. 더 크게 쓰고 싶었던 책인데 지난주엔 새, 지지난주엔 벌 관련 책을 크게 리뷰한 터라 이번주에 잡초까지 했다간 지면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싶어 자체검열했는데… 뭐, 소심하니까 회사원이죠.

싸우지 않고 살아남기… 잡초의 제1 생존 전략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봄

거실 바닥에 앉아 무릎 위 쿠션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부엌 식탁서 주로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편하다 해도 식탁은 식탁일 뿐 책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장시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사무실 책상서 일할 때에 비해 목과 허리에 무리가 가더라고요.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최대한 자세를 많이 바꿔가며 일하는 것이 최근 익힌 ‘재택 노하우’ 중 하나입니다.

독일 작가 타니아 슐리의 책 ‘글쓰는 여자의 공간’(이봄)엔 여성 작가 35명의 집필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자기만의 방’이 없었던 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부엌 식탁은 창작의 산실이었다고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은 어질러진 식기와 빵조각 틈에서 글을 썼고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도 아침식사의 차(茶) 와 설탕을 챙긴 후 식탁에 앉아 썼다는군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식탁에서 태어났답니다.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애틀랜타의 ‘마거릿 미첼 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집필실 같은 건 없었습니다. 거실 창가의 작은 탁자에 타자기가 놓여 있고 의자 등받이엔 수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미첼은 글을 쓰던 중 손님이 오면 재빨리 타자기를 수건으로 덮어 숨겼답니다. 책을 쓴다는 건 ‘숙녀답지 않은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번듯한 책상을 갖고 싶은 건 모든 글쓰는 사람의 꿈이겠지만 물 좋고 정자 좋기가 어디 쉽던가요? 때로는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해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밀려오려 하면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쓸 때면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던 조르주 상드처럼. 곽아람 Books 팀장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