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무함마드를 그리면 안 돼"

남상훈 2021. 4. 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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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사만화가 플랑튀는 지난 1일 자 르몽드지의 만평을 끝으로 은퇴했다.

1972년부터 50여 년 동안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일간지의 만평을 담당했던 붓이 떠나가는 셈이다.

1944년부터 기자와 논설위원, 편집인 등 명필들이 르몽드를 기라성같이 빛냈으나 누구도 플랑튀만큼 오래 독자의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

50여 년 동안 플랑튀가 그린 만평은 3만 장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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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옥죄는 세상에 위트 있는 일침
르몽드 만평 50년 담당 플랑튀 은퇴 아쉬워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사만화가 플랑튀는 지난 1일 자 르몽드지의 만평을 끝으로 은퇴했다. 1972년부터 50여 년 동안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일간지의 만평을 담당했던 붓이 떠나가는 셈이다. 1944년부터 기자와 논설위원, 편집인 등 명필들이 르몽드를 기라성같이 빛냈으나 누구도 플랑튀만큼 오래 독자의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만평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2006년의 그림이다. 당시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 만평을 두고 덴마크 언론과 이슬람 세계가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플랑튀는 “무함마드를 그리면 안 돼”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쓰는 손과 연필을 그렸다. 각 문장은 하나의 획을 형성하고 문장이 반복되면서 획들이 모여 턱수염이 더부룩한 노인이 그려진다. 그는 누구일까. 무함마드일 수도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닮기도 했다. 답은 독자 몫이다.

플랑튀의 만평은 이처럼 아이러니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세상을 그리면서도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는 그림은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또 권력의 위선과 세상의 비겁함을 날카롭게 고발하면서 깊이 생각하게 한다.

50여 년 동안 플랑튀가 그린 만평은 3만 장에 달한다. 프랑스와 세계의 역사적 인물들은 가슴 조이며 만평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은밀히 관찰했다. 일례로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는 플랑튀의 열렬한 팬이었고 둘은 실제 여러 차례 만나기도 했다. 플랑튀는 1991년 아라파트에게 다윗의 별로 상징되는 이스라엘 국기를 팔레스타인 국기 옆에 그려달라 부탁했고, 이듬해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에게 그림을 들고 가서 ‘해결책’이라는 글과 함께 서명을 받아냈다. 플랑튀가 중재한 이 그림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적대세력이 서명한 첫 문서가 되었다.

2006년 플랑튀는 유엔 산하 ‘평화를 위한 만화’(Cartooning for peace)라는 국제운동도 출범시켰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명의 만평가들이 모여 관용의 정신을 장려하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취지다. 표현의 자유라는 바탕 위에 문화적 충돌을 대화를 통해 지혜롭게 극복해 보자는 의도다.

산업 디자이너 아버지를 둔 플랑튀는 의사가 되라는 집안의 압력에 반항하여 가출한 소년이다. 만화를 배우겠다고 파리를 떠나 에르제와 땡땡의 나라 벨기에에 유학을 시도했으나 학비와 생활비가 없어 석 달 만에 포기하고 돌아왔다. 신문을 열심히 읽으며 독학으로 만평을 연마한 플랑튀는 스물한 살에 작품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르몽드로 찾아갔다. 그리고 르몽드는 학벌도 배경도 없으나 능력만은 반짝이는 청년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제 청년은 노인이 되어 회사를 떠난다. 플랑튀의 재미있는 만평이 없는 르몽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진부한 그림을 그리는 만평가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십 년 전부터 은퇴를 희망했다는 플랑튀에게 박수와 경의를 보낸다.

만평을 아예 포기한 뉴욕타임스 사례에서 보듯 존중받을 권리를 내세우는 다양한 집단이 표현의 공간을 좁혀오는 세상이다. 그러나 비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살아 숨 쉰다 할 수 없다. 앞으로도 자유와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플랑튀의 활약을 기대하며 행복한 여정을 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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