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서 사무직노조 설립 바람..2030세대 '공정한 임금' 실험대

정대연 기자 2021. 4. 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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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계열사 직원들 논의 중
LG전자·금호타이어 등서 결성
사측 보상체계 불만이 주요 요인
직급 제한 '노조 가입 범위' 쟁점

[경향신문]

현대차그룹 양재동 사옥. 현대차그룹 제공

“수년 전부터 회사가 신입사원들과 이전보다 낮은 기본급으로 계약하면서 ‘저가형 신입사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상대적으로 연차가 높은 생산직노조가 임금 인상보다 정년 연장에 더 힘을 쓰는 모습도 사무직들의 불만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의 한 30대 사무직 노동자 A씨는 5일 사무직노조 결성 움직임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기업에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사무직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소속 젊은 사무·연구직 노동자 3600여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모인 SNS에는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오트론 등의 직원들이 가입했다.

지난달 16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타운홀 미팅’에서 적절한 보상을 약속했고, 지난달 29일에는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e메일을 통해 성과급 지급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노조 결성 움직임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회사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경영진 연봉은 인상됐는데 직원 임금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게 이들의 주된 불만이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 매출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현대차 직원 1인당 평균임금은 오히려 1년 전보다 800만원 줄어든 8800만원이었다. 지난해 생산직 노동자 중심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기본급 동결에 합의한 영향도 있다.

보상체계에 대한 불만과 노조 결성 흐름은 최근 대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 산정에 대한 논란이 처음 불거졌고 지난달 LG전자, 이달 초 금호타이어에서 사무직노조가 결성됐다.

사무직노조 결성 움직임은 2030세대가 ‘공정’을 중시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회사 보상체계의 문제를 기존 노조처럼 ‘생존권’이 아니라 ‘불공정’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계는 일단 노조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던 사무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 가입률이 상승했음에도 여전히 10%대 초반에 불과한 상황에서 구태의연한 기업문화를 바꾸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조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조언한다. 당장 ‘노조 가입 범위’ 역할을 하는 ‘단체협약 적용 범위’를 두고 사측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사무직노조가 결성된 현대차그룹 사업장들은 사측이 단협 적용 범위를 매니저급(사원·대리)으로 제한하려 해 첫 단협 체결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매니저급은 통상 7~8년차 이하 직원이다. 2018년 12월 노조가 결성된 현대엔지니어링은 이 문제로 2년 넘게 단협 체결을 못하고 있다. 2014년 노조를 만든 현대차증권은 3년 만에 첫 단협을 맺었지만 전 직원 700여명 중 노조 가입 대상이 100명 수준에 불과하다. 김지용 민주노총 건설연맹 건설기업노조 홍보부장은 “현대차그룹은 생산직노조 사례를 직급체계가 전혀 다른 사무직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며 “그룹사 사무직노조들이 집단으로 단협 적용 범위를 두고 그룹과 협상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노조 결성을 추진하는 임시집행부는 그룹사 통합노조 결성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그룹사노조가 이상적이지만 회사별로 임금 수준과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이라 조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개별사별로 조직하되 시기를 맞춰 교섭과 쟁의를 하는 ‘따로 또 같이’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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