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반중정서'는 누가 키웠을까
드라마는 재미적 요소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판타지나 스릴러, 청춘 로맨스 같은 장르말이다. 사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드라마적 재미를 배제한다면 누가 만들 것이며 누가 시청하겠는가.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노골적인 중국풍 소품과 선을 넘어버린 역사왜곡들. 역사에 대한 무지를 넘어 대중의 '반중정서'라는 역린을 건드린 무신경한 제작 태도에 실망하고 말았다. 갓 시작한 드라마가 비난의 융단폭격을 받고 방송 2회 만에 문을 닫아버렸다. 사상 초유의 일이란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엑소시즘 사극이다.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악령과 이를 상대로 백성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태종, 양녕대군, 충녕대군(세종) 등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첫 방송부터 사달이 났다. 태종이 아버지인 태조의 환영을 보고 백성을 무참히 학살하는 것이다.
사극도 상상력이 가미된 창작물이니, 한발 양보해 거기까지는 좋다고 치자. 그런데 훗날 민족의 성군으로까지 추앙받는 충녕대군이 기생집에서 바티칸에서 온 카톨릭 구마 사제에게 중국식 만두와 월병을 대접하는 장면이라니, 참 해괴하다. 대중의 용인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나 버렸다.
시청률을 의식해선지 처음부터 무리수를 뒀다. 드라마 속엔 중국 자본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구마사'를 제작한 YG스튜디오플렉스의 모회사인 YG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중국 텐센트로부터 1000억여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또 다른 기업인 상하이펑잉도 YG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박계옥 작가는 중국 콘텐츠 제작사와 집필 계약을 맺어 논란까지 일었다.
배경이 이러니 '조선구마사'는 애초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제작사측은 "중국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라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한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반중정서가 '조선구마사' 사태를 통해 폭발해버렸다. 잠시 복기해보면 '반중정서'가 표면화된 건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얻어터진 직후부터였다. 중국은 당시 한한령(한류 제한령)을 내려 K팝 공연을 틀어 막고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방영을 중단시켰다. 유통과 게임, 여행업계가 초토화됐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짐을 싸야했다. 이번엔 중국에 단단히 찍힌 글로벌 패션브랜드 H&M 이야기도 들린다. 중국의 혹독한 보복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중국은 또 2002년부터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왜곡해왔다. 한국의 고대사 자체를 비틀어버린다는 점에서 일본의 위안부 역사왜곡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국은 발해, 고구려도 자기네 영토라고 했다. 이것 뿐일까. 김치도 삼계탕도 한복도 갓도, 심지어 윤동주도 모두 자기들 것이라 우긴다. 중국의 최대포털 바이두엔 북한 김정은도 '중국 조선족'으로 나온다. 모든 게 중국 것인 세상이다. 코로나19는 왜 중국 것이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반중정서'가 이 지경까지 오게된 데엔 정부의 탓도 크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현실외교의 비정함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중국에 저자세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중국의 '알몸김치' 파문에 부아가 치미는데, 이를 설명한다는 식약처 직원은 뜬금없이 중국을 '대국'으로 한국을 '속국'으로 표현했다. 만우절 농담인줄 알았다. 참 불편하고 속상하다.
식약처가 정책 설명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며 서둘러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생각해보니 더 높은 위정자는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말했었다. 중국을 맹목적으로 사대했던 조선시대도 아닌데, 국민을 섬긴다는 분들의 정서가 이러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한미일 안보실장회의가 미국에서 열린 다음날 중국에선 대만을 코 앞에 두는 곳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불러 회담했다. 양국의 문화 교류 활성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건설적인 논의도 가졌다고 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실질적 내용은 없다. 다시는 지지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일본에겐 큰소리 치는 정부가 중국 앞에만 서면 왜 그리 입을 닫는 걸까. 중국이 초래한 역사왜곡 문제는 더 늦기 전에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반중정서'든 뭐든 치유의 첫발을 뗄 수 있을테니.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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