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 일감 개방"..공정위 이런 간섭까지

백상경 2021. 4. 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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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대기업 CEO 불러놓고
경쟁입찰 전환 선포식 열어

◆ 구내식당까지 정부 입김 ◆

공정거래위원회가 5일 구내식당 급식마저 외부 업체에 강제 개방토록 하는 8대 대기업집단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개최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앞줄 가운데)이 강희석 이마트SSG 사장,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 가삼현 현대조선해양 사장, 장재훈 현대자동차 대표, 권영수 LG 부회장, 이광우 LS 부회장(뒷줄 얼굴 정면 인물 왼쪽부터) 등을 대동하고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승환 기자]
정부가 삼성·현대차·LG 등 국내 대기업들의 구내식당 일감을 개방하라고 본격 압박하고 나섰다. 대기업들이 주로 계열사·친족회사들에 수의계약 형식으로 맡기는 단체급식 일감을 중소 급식업체들에도 경쟁입찰 방식으로 내놓으라는 게 골자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주재로 이 같은 방향의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삼성·현대자동차·LG·현대중공업·신세계·CJ·LS·현대백화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8개 대기업집단의 대표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해 일감 개방 계획을 밝혔다.

특히 LG는 내년부터 단체급식 일감을 전면 개방하기로 하고, 소규모 지방 사업장은 인근 중소·중견 급식업체를 우선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CJ도 그룹 내 단체급식 물량의 65% 이상을 순차적으로 개방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우수한 급식업체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중소기업, 소상공인, 취약계층 모두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기업이 '제 살을 깎아 남에게 주는 최상위의 상생인 '일감 나누기' 단체급식 일감 개방을 흔쾌히 결단해주셔서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는 대기업 계열사 급식업체 CEO가 아니라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 장재훈 현대자동차 대표, 권영수 LG 부회장 등 8개 대기업집단의 주축 사령탑들이 자리를 채웠다. 글로벌 경쟁을 위한 경영에 매진해야 할 8개 그룹 핵심 CEO들이 급식 일감을 개방하는 자리에 동원된 것이다.

급식업계 내부에서도 정부가 대기업의 사내급식까지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공정위는 30년 넘게 대기업 계열사·친족기업인 단체급식 상위 5개사가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따내면서 4조3000억원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업계에선 사원 복지 차원에서 출발해 시작된 급식업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대기업 CEO 불러놓고…"구내식당 일감 개방하라"

1.2조 대기업 급식 사업 개방

공정위 "대기업 계열사 중심
일감 몰아주기 관행 개선해야"

수천명 식사 한꺼번에 제공
중소업체가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무늬만 일감개방' 될수도
정부가 대기업 구내식당 일감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CJ는 그룹 내 단체급식 물량의 65% 이상을 순차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 내 구내식당인 그린테리아의 모습. [한주형 기자]
8개 대기업 집단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한 단체급식 일감 개방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약 25년간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던 1조2000억원 규모 대기업 급식 일감이 경쟁 시장으로 나오게 됐다.

4조3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국내 단체급식 시장 중 약 30%에 해당한다. 단체급식 분야 독립·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열리고, 경쟁을 통해 구내식당 서비스 수준도 향상될 것이라는 게 공정위 측 기대다.

하지만 급식업계 일각에선 "제 식구 밥도 직접 못 먹이게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직원 복지에서 출발한 단체급식 사업 특성상 외부 업체가 들어온다고 해서 딱히 식사의 질이 높아지거나 가격이 저렴해지긴 어렵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여기에 수천 명의 식사를 한 번에 제공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장 급식은 중소업체들이 사실상 수행하기 어려워 결국 경쟁입찰을 거쳐 대형 업체들이 돌아가며 일을 가져가는 '무늬만 일감 개방'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5일 공정위는 삼성·현대자동차·LG 등 8개 대기업 집단과 함께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하고 대기업 구내식당 일감을 전격 개방한다고 선언했다.

단체급식 시장은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등 상위 5개 업체가 4조3000억원 시장에서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들이 모두 15대 기업 집단의 계열사 또는 친족 기업이며, 대기업 수의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일감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거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2017년 9월 기업집단국 신설 이후 단체급식 시장에 대한 구조개선 작업을 진행해 왔다. 또 2018년부터 삼성웰스토리에 대한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부당 지원)를 조사하고, 올해 초 검찰 고발과 과징금 부과 등 내용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발송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그 결과물이다. 8개 대기업 집단 대표사는 모두 단체급식 일감 개방 원칙을 천명하고 적극적인 이행을 약속했다. 기숙사·연구소 등 소규모 시설을 대상으로 내년에 약 1000만식(食) 규모 일감을 개방하고, 향후 대규모 사업장까지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개방 의지를 드러낸 LG와 CJ 외에 삼성전자는 수원 3식당, 기흥 남자기숙사 식당 등 사내식당 2곳을 개방하고 향후 전향적으로 일감 개방을 검토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기존 사업장의 비조리 간편식 부문에 경쟁입찰을 시범 도입하고, 연수원·기숙사·서비스센터 등 신규 사업장에도 경쟁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말부터 울산 교육·문화시설 내 식당을 중소 급식업체에 개방한다. 신세계는 현재 중소기업 등에 개방한 42개 사업장에 이어 추가로 경쟁입찰 물량을 늘릴 방침이다.

하지만 급식업체들은 당장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우선 대기업 사업장 구내식당을 '상생' 대상으로 보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대형 급식업체 관계자는 "이를테면 대형 제조공장에서 식중독 사태라도 한 번 터진다면 생산 라인이 며칠 동안 마비될 수 있어 대기업에 급식은 '리스크 관리' 영역으로 여겨진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일을 맡을 중소기업이 없어서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만들어 '직원 밥은 내가 챙긴다'는 식으로 운영했던 것인데, 단순히 계열사 거래가 많다고 문제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했다. 경쟁입찰이 제대로 작동할지를 두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또 다른 급식업체 관계자는 "공정위가 일감 개방 계획을 내놓으라고 하니 대기업들이 일단 팔 한쪽씩 내놓는 결정을 내렸지만, 급식은 유통망이 확보돼야 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사실상 지방에 동떨어진 수익성 없는 사업장 등은 경쟁 업체들에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온다"며 "결국 자기 계열사 급식업체만 들어와 일감을 따내는 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바깥에서는 급식업체들이 서로 일감을 나눠 먹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 같은 염려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들도 내부 검토를 여러 번 거치며 급식 품질이 향상될 수 있다고 보고 동참하기로 한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경쟁입찰 결과 등을 시장에 공개해 나눠 먹기 등을 예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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