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답 없는 아파트 '택배 전쟁'..1km를 손수레 끄는 택배기사

오진영 기자 2021. 4. 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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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 2.3m, 택배차량 못 들어가..손수레로 배달 중인 택배기사

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입구. 2차선 도로에 흰색 탑차(택배 차량)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택배기사는 손수레를 꺼내 상자 수십개를 옮겨 실었다. 목적지는 단지 내 아파트다. 53개 동에 5000여 가구가 사는 대규모 단지여서 먼 곳은 차를 세워둔 곳에서 배송지가 1km까지 떨어져 있다.
단지 밖에 차를 세우고 먼 길을 손수레로 짐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1일부터 이 아파트가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 높이가 낮아 상당수 탑차는 진입이 불가능하다.

택배 기사들은 아파트의 일방적인 '갑질'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차량 개조비용과 인력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호소한다. 반면 아파트는 주민들의 안전과 시설물 훼손 등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택배업계는 개인사업자인 기사의 개조비용까지는 부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 속 '택배 전쟁'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아파트 들어오기 위해 300만원 써야" VS "단지 내 유치원 있다"
5일 택배차량의 지상출입이 금지된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내에서 택배기사가 손수레로 물건을 배달하고 있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이날 강동구 고덕동의 아파트 내에서 손수레를 끌고 물품을 배달하던 택배기사 김모 씨(42)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수레로 택배상자를 배달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단지 내 도로의 총 길이는 1km가 넘는다.

김씨는 "탑차 높이가 2.8m인데 이 아파트에서는 제한 높이가 2.3m인 지하주차장으로만 다니라고 한다"며 "탑차를 2.3m 이하로 개조할 수도 있지만 비용도 수백만원이 넘고 실을 수 있는 물량도 제한돼 손해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택배기사는 시간이 돈인데 빨리 움직이면 그나마 손해가 덜하다"고 했다.

탑차를 지하주차장 출입 가능 높이인 2.3m 이하로 개조한 기사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하주차장에서 물품을 내리던 택배기사 윤모씨(45)는 "탑차 높이를 낮추는 데에 한 달 월급인 300만원을 써 이번 달은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라며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실을 수 있는 물량이 줄어 터미널에 더 자주 가야 해 결국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사전에 예고된 조치'라고 항변한다. 이 아파트에는 하루 100대 이상의 택배 차량이 드나드는데 유치원·경로당 등 위험 시설이 있어 안전을 염려한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한 주민은 "택배 차량뿐 아니라 입주민들 차량도 모두 금지했다"며 "갑질보다는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

아파트 관계자는 "지난 해부터 택배사 측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하거나 아파트 내부에 물품 전달 거점을 만드는 등 협의안을 제시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어 입차 금지를 강행한 것"이라며 "입주민대책위원회와 관리사무소 등이 협의해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다"이라고 했다.

지난 2일 입구에 쌓여 있던 '택배 산'은 아파트 측이 택배기사들에게 '아파트 입구에 있는 택배 물품을 찾아가라'고 통보하면서 없어졌다. 지난 주말 서울에 많은 비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나오자 택배기사들은 물품이 훼손되면 직접 변상해야 하기 때문에 차량을 몰고 와 물품을 회수했다.
문제는 지하주차장?…"탑차만 들어올 수 있으면 아무 문제 없어"
5일 '택배 대란'이 발생한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 정차한 개조 택배 차량(왼쪽)과 아파트 도로 위에 택배가 방치돼 있는 모습(오른쪽) / 사진 = 오진영 기자

택배기사와 '공원 아파트'의 택배 전쟁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도 '공원 아파트'가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지상출입을 금지하면서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아파트 입구에 쌓인 택배 물품으로 '택배 산'이 만들어졌다.

이는 최근 지상에 도로를 없애고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차량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건설사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입주민 편의를 높이기 위해 지상 사용면적을 늘린 구조다. 하지만 지하주차장 높이 기준이 '최저 2.3m'여서 건설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최저 기준'에 맞도록 지하주차장을 설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관련 규정을 손봐 2019년 1월부터 '공원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입구부터 높이를 2.7m로 높이도록 했다. 그러나 이 아파트의 경우 2016년 시공했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

택배업계에서는 택배기사가 부담하는 수백만원의 개조 비용을 대신 부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기사는 택배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아닌 '자영업자' 신분"이라며 "회사가 직원이 아닌데 차량을 바꾸는 비용까지 모두 부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지하주차장 높이가 탑차 출입 가능한 정도의 아파트는 지상 출입을 막더라도 마찰이 적다. 논란이 불거진 아파트에서 약 2km 떨어진 한 아파트 관계자는 "몇 년 전 택배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탑차의 지상 출입을 막았으나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지하주차장 높이가 높아 탑차 출입이 쉽고 수시로 택배기사들과 협의를 거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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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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