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참정권을 위하여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고민해본 적은 있지만,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고민한 적은 없습니다. 그만큼 제게 투표는 당연했습니다. 선거권자로서 주어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선거 기간만 되면 '어떻게 투표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투표가 당연하지 않은 이들, 바로 발달장애인입니다.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 입장하다 제지당한 임종운 씨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지침에는 '장애(시각, 지적/자폐성 등 신체)로 혼자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즉, 가족 혹은 자신이 지명한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할 때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신체장애로 분류되진 않지만 투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만큼, 장애 유형을 폭넓게 설정한 겁니다.
하지만 이 규정은 4년 뒤인 21대 총선 때 바뀌었습니다. 보조 가능한 장애 유형에서 '발달장애'가 제외된 겁니다. 결국, 지침에 명시된 대로 시각장애 및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발달장애인도 투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보조인의 도움 없이 혼자 투표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선관위는 '발달장애의 경우 부모/보조인이 대신 기표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투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보조 가능한 장애유형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직접투표, 비밀투표 원칙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은 이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임 씨가 기표소에서 보조인과 함께 입장하다 제지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난해, 발달장애인 12명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투표 시 보조 가능한 유형에서 발달장애인만 제외한 선관위의 지침은 소수자의 참정권 행사를 막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겁니다. 인권위는 1년간의 고심 끝에, '발달장애인을 제외한 선관위 지침은 차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발달장애인이 걱정 없이 투표하기 위해 필요한 배려
우선, 발달장애인들은 기표소에 공적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지명한 보조인에게 안내를 받을 수 없다면, 공식적으로 발달장애인을 돕는 '공적 조력자'를 배치해달라는 겁니다. 이들은 기표소에 공적 조력자를 배치하면 누군가 발달장애인 대신 투표할 일도, 투표에 영향을 미칠 일도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또,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투표용지에 후보의 얼굴 사진이나 당의 로고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보통의 투표용지에는 숫자와 소속 당명, 후보명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림이나 사진 없이, '글자'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유권자가 글자를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임종운 씨는 투표용지에 적혀 있는 세 글자 이름을 보면, 첫 글자만 알고 나머지 두 글자는 모른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이름 석 자가,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겁니다.
글자를 이해하지 못해 투표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투표용지에 그림, 사진이 추가된 '그림 투표용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글자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림을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배려해달라는 겁니다. 실제로 대만, 아일랜드 등 일부 국가는 이미 그림 투표용지를 도입했습니다. 이 국가에선 글자 이해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큰 문제없이 투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해하기 쉬운 선거 공보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할지 결정하기 위해선,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하지만 공약을 이해하기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장애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선거 공보물'을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온전한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조윤하 기자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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