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장외에서 한판 붙자"..스포츠로 겨루는 저축은행
저축은행들이 상당한 예산을 써가면서 스포츠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젊은 금융 소비자들이 주축인 스포츠 팬층을 공략해 접점을 넓히고, 이미지와 친숙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업계 3~4위권인 페퍼저축은행은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에 여자부 신생팀 창단을 위한 창단의향서를 제출했다. 현재 국내 여자 프로배구 리그는 프로농구리그(KBL)를 넘어 프로야구(KBO) 다음으로 많은 평균 관중 수를 확보할 정도로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여자 프로배구 리그에 속한 팀은 총 6개팀으로, 금융권에서는 인천을 연고로 흥국생명이 ‘핑크스파이더스’를, 경기도 화성을 기반으로 IBK기업은행이 ‘알토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페퍼저축은행은 경기 성남시를 연고지로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 배구단은 구단별로 선수 구성에 따라 총 연봉에서 차이가 나지만, 평균 1년 동안 35억원에서 40억원을 운영 자금으로 쓴다. 신생팀은 처음 리그에 참여할 때 ‘가입비’와 발전기금을 내야 해 창단(創團)에는 일시적으로 돈이 더 필요하다. 10년 전 창단한 IBK기업은행은 가입비 2억원, 특별발전기금 8억원 등 10억원을 별도로 냈다.
이미 여자배구단을 운영 중인 두 금융권 구단에 비해 페퍼저축은행이 상대적으로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좁은 점을 감안하면, 창단 비용과 운영 자금을 합친 50억원은 적은 액수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페퍼저축은행 순익은 2019년 133억원에서 지난해 348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감안해도 배구단 창단 자금에는 최소 순익의 15% 정도가 필요하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그럼에도 페퍼저축은행이 스포츠 구단 운영을 감행하려 하는 배경에는 업계에서 가장 큰 경쟁자인 OK저축은행이 남자 프로배구 리그에서 ‘OK금융그룹 읏맨’ 배구단을 직접 운영하며 운영 자금을 상쇄할 만큼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페퍼저축은행에 한 계단 앞선 저축은행 업계 2위 OK저축은행은 ‘러시앤캐시’ 시절이던 2013년부터 경기도 안산을 연고로 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팀은 지난 8년 동안 리그 우승을 두 번 차지하면서 내로라하는 강호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난 2014년 연고지 안산에 자리 잡은 단원고등학교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실의에 빠지자,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노란 유니폼에 ‘기적을 일으키자’는 문구를 새기고 경기를 뛰면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남자 배구단 운영과 별도로 OK금융그룹 최윤 회장은 대한럭비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비인기 스포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OK금융그룹 럭비선수 특별채용’을 통해 직원 15명을 선발하고, 아마추어 스포츠 클럽인 OK금융그룹 럭비 클럽팀을 창단했다.
페퍼저축은행과 함께 4~5위를 다투는 웰컴저축은행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에 ‘웰뱅톱랭킹’ 시스템을 도입해 프로야구팬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웰뱅톱랭킹’ 시스템은 승·패나 홈런·타율처럼 전통적으로 프로선수를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세이버매트릭스(전통적 수치 외에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는 야구통계분석기법)를 이용해 게임의 승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선수를 뽑는다.
웰컴저축은행 관계자는 "KBS N스포츠 채널에 이어 올 시즌부터는 SBS스포츠와 MBC스포츠플러스에도 관련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해당 스포츠 케이블 채널에 웰컴톱랭킹을 선전하기 위해 쓰는 협찬 비용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웰컴저축은행은 이 랭킹 선정에 참여하는 금융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최고 금리가 약 6%인 ‘웰뱅톱랭킹 정기적금’ 상품도 매 시즌 운영 중이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마케팅을 적절히 사용하면 금융사 특유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고 역동적인 느낌을 브랜드에 입히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인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국내 저축은행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대부업 흡수 과정을 거치며 일부 금융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다"며 "공정성과 건전함이 핵심 가치인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은 젊은 금융 소비자를 포함한 스포츠 팬층을 상대로 인지도를 개선하고 더 나아가 직접 금융 소비자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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