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 뛰어넘는 직접민주주의가 '촛불'의 계승

박찬수 2021. 4. 5. 14: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20
2017년 11월22일 국회에서 쟁점토론을 위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열렸다. 20대 국회는 헌법개정특위를 구성해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를 담은 보고서까지 냈지만, 여야의 정치적 이해가 엇갈려 추진되진 못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민주주의를 제도와 절차의 완성으로만 여기면, 철 지난 유물처럼 낡은 것이 된다. 2016년 촛불은 민주주의가 역동적이고 내용적으로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젠 그 폭을 확장하고 깊게 바닥을 파내려갈 방법을 모색할 때다. 다시 민주주의를 고민하지 않고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여러 장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이 구절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부터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까지, 때론 노래로 때론 구호로 때론 일반 시민의 연설로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영화 <변호인>의 클라이맥스는 배우 송강호씨가 5공화국 법정에서 헌법 제1조를 외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구절은 촛불과 함께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헌법에 명문화된 건 훨씬 오래전의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기인 1948년 유진오 선생이 기초한 헌법 초안 제1조는 “조선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發)한다”고 되어 있다. 그 뒤 오랜 독재 치하에서도 헌법 제1조는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유일하게 바뀐 건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때였다. 박정희 정권은 헌법 제1조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로 개정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꿔 영구집권을 꿈꾸면서, 어용 기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핵심으로 한 헌법 개정이 이뤄졌고, 제1조의 내용은 비로소 본래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국민이 권력의 주인으로 명실상부하게 주권을 행사한 건 1960년 4월혁명 이후 2016년 촛불집회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그 전까지 주권의 행사는 선거라는 투표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통령을 임기 도중 권좌에서 끌어내린 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촛불의 진정한 의미는 생기를 잃고 액자에 걸렸던 ‘주권재민’(主權在民)이란 글자에 숨을 불어넣어 되살린 데 있다. 선거 때만 ‘주권자’의 대접을 받는 유권자에서 벗어나, 임기 중이라도 국민 기대를 배신한 권력자를 끌어낼 수 있는 게 헌법 제1조의 정신임을 일깨웠다.

하지만 그 이후 국민 주권은 생활 속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때가 되면 선거의 계절만 어김없이 돌아왔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보여주듯, 선거란 ‘그때 그 사람들’ 가운데 차악을 선택하는 연례 행사가 되어버렸다. 촛불의 궁극적 지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지만, 대통령 탄핵에 그쳐선 안 된다는 점엔 누구나 공감한다. 당시 광장엔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 요구가 분출했다. 2018년부터 폭발적으로 전개된 ‘미투 운동’ 역시 촛불의 성과 위에 기반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 절차적 민주주의, 인권과 기본권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면, 촛불 이후엔 공정과 포용에 주목하고 그 내용을 풍성하게 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민주주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직접민주주의 확대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와 정당 체제를 약화시킬 거란 비판은 오랫동안 있어왔지만,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정상호 서원대 교수(정치학)는 말했다. 정 교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모든 시민에게 정보를 똑같이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직접민주주의를 가로막아온 기술적 한계가 사라진 것이다. 또 하나는 2016년 촛불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정보를 접한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대중’이란 단어가 흔히 내포했던 ‘수동적이고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이란 편견을 뛰어넘어, 스스로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국민입법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촛불정신 계승이란 과제와 맞아떨어진다.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을 ‘소환’한 게 탄핵이었다면,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안하고 주요 정책결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시민 참여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던 것도 직접민주주의 지평을 한뼘쯤 넓힌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직접민주주의 확대는 대의제와 정당 체제를 약화하기보다 오히려 보완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2016년의 미국 대선을 한번 보자. 대선 투표율은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56.9%)이었고, 승자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얻은 표는 약 6298만표였다. 이는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보다 300여만표 적은 수치고, 전체 유권자(2억3155만여명)의 27.2%에 불과했다. 이렇게 적은 표로 선출된 공직자가 임기 중 정책 결정권을 배타적으로 갖는 게 민주주의적인지, 아니면 중요 정책결정을 그때그때 국민에게 직접 묻는 게 더 민주주의적인지는 충분히 논쟁할 가치가 있다.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안하는 국민발안제가 의회의 입법 권한을 침해할 거란 걱정은 현실적이지 않다. 지금 국회의 신뢰와 권위를 훼손하는 건 입법 권한의 제약이 아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신뢰가 땅에 떨어진 탓이 더 크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32%로 떨어졌다. 그래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중 누구를 더 신뢰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통령 신뢰도가 월등히 높게 나올 것이다. 단적인 예가 2015년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충돌이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야당과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가 정한 국회법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건 명분이 없다. 그런데도 거부권 행사를 전후해 이틀간 박 대통령 지지율은 29.9%에서 37.4%로 7.5%포인트 수직 상승했다. 지지층이 결집한 이유도 있지만, 국회와 대통령이 대립할 때 대통령을 더 믿을 수 있다는 국민 정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개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사실 이것이다. 대통령제에 수많은 비판이 제기돼도 국민들이 선뜻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손을 들어주지 않는 건, ‘국회의원은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탓이 크다. 국회를 위해서도 국민발안제 같은 제도의 도입은 필요하다. 국민발안제는 국회 입법권을 빼앗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회의 신뢰를 높인다.

국민발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과격하거나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8년 대통령과 국회가 내놓은 헌법 개정안엔 이런 내용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그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낼 수 있는 ‘국민발안제’가 왜 필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가 법안 통과에 소극적인 선거법이나 재벌·검찰 등의 로비에 취약한 법안의 효과적 입법을 위해선 국민발안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창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정희 전 국회의원은 국민발안제에 더해, 국회가 만든 법률을 국민이 직접 폐기할 수 있는 ‘폐기 국민투표제’ 도입을 주장한다. 가령, 이젠 정착 단계에 들어선 보수 종편채널들은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입법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스트롯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 성공과 별개로, 종편은 보수 거대신문사가 방송까지 장악해 여론 지형을 왜곡하고 언론을 선정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9년 7월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야당 저지를 뚫고 다른 의원의 찬성 버튼을 대신 눌러주는 위법을 저지르면서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미디어법이 원인무효라고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그러나 헌재는 ‘위법하지만 그 시정은 국회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명백한 하자를 지닌 법안도 일단 국회를 통과하면 어쩔 수가 없다. 이정희 전 의원은 ‘폐기 국민투표제’가 있다면 법 시행 전에 국민투표에 회부해 원래대로 되돌릴 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 제도가 있다면,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사건에도 불구하고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처럼 어처구니없는 법이 입법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또다른 우려는 극심한 대립의 심화다.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들이 정치를 하는 대의제와 달리, 대중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면 감정에 쉽게 휘둘리며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대의제 역시 다르지 않다는 건 한국 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가 ‘협치’를 내세웠지만, 실제 협치가 이뤄진 적은 거의 없다. 현 정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이걸 대통령제의 근본적 한계라고 말한다.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이 모든 걸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에선 협치나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통령제 효시인 미국을 보면, 당파적 대립이 훨씬 완화됐던 시기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여럿 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공화당)은 민주당 의원들과 더 친하다는 조크를 들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유럽 많은 나라에서 갈수록 정파적 대립이 심각해지는 현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치적 대립의 격화가 단지 권력구조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훨씬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 특히 젊은 세대가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입법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하는 건 세대 갈등을 완화하고 대의제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준다. 민주주의를 제도와 절차의 완성으로만 여기면, 철 지난 유물처럼 낡은 것이 된다. 2016년 촛불은 민주주의가 역동적이고 내용적으로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젠 그 폭을 확장하고 깊게 바닥을 파내려갈 방법을 모색할 때다. 다시 민주주의를 고민하지 않고선, 한국사회가 마주한 여러 장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끝>

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pc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