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가난은 대물림조차 되지 않는다 / 이강국

한겨레 2021. 4. 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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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강국 ㅣ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은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나라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로 1보다 낮아졌는데 선진국 평균은 약 1.6이었다. 이후에도 더 낮아져 2019년 0.92를 기록했고 코로나19의 충격을 배경으로 작년에는 0.84까지 떨어졌다. 신생아 수는 2019년 30만2700명에서 2020년 27만2400명으로 약 10%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로 인한 청년층의 고용과 소득 충격, 비대면 생활의 확산, 출산계획 취소 등으로 2022년에는 출산율이 저위 시나리오인 0.72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구쇼크나 인구절벽 이야기가 나온 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지난해에는 주민등록 기준으로 드디어 인구가 감소하고 말았다.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경제성장과 재정에는 당연히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출산율 하락은 사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급속한 성장을 배경으로 한 가치관의 변화와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어려운 여성의 지위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를 빼놓을 수 없다. 청년들에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돈이 많이 드는데 생활은 팍팍하고 미래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인구 1천명당 혼인율은 2011년 6.6을 기록한 이후 내내 하락하여 2020년 4.2까지 낮아졌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혼인율이 낮지는 않지만 하락 속도가 매우 빠르다. 무엇보다도 비혼가정의 출산 비율이 한국은 약 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약 40%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다. 따라서 비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바뀌기 어려운 현실에서 혼인의 감소는 바로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한 연구는 결혼한 여성만 대상으로 한 출산율은 꽤 높다고 보고한다.

혼인율의 하락은 결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역시 결혼에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을 꾸리는 데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따뜻한 보금자리가 필요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신혼집 마련에 드는 비용이 약 2억원에 이른다 하니 어느 정치인의 파격적인 결혼지원금 공약도 이해할 만하다. 최근 서울 집값은 크게 올라 평생 버는 소득으로 집 한 채 가질 수가 없으니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절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결혼은 정확하게 불평등의 문제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8년 30대 남성 임금근로자 혼인율이 상위 10%는 86.3%인데 소득이 하락할수록 계속 내려가 하위 10%는 20.3%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그 비율이 각각 92%와 57%였으니 최근 10년간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혼인율이 크게 하락한 것이다. 또한 한 실증연구는 다른 요인들을 통제하고도 부모의 가구소득이나 금융자산이 미혼자녀의 결혼 확률에 유의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다.

일본 남성은 50살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생애미혼율이 2015년 약 23%나 되었는데 저소득층의 미혼율이 훨씬 더 높았다. 한국도 일본을 급속히 쫓아가고 있어서 2025년에는 전체 남성의 약 5분의 1이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 전망이다.

힘겹게 결혼을 해도 가난을 물려주기 싫고 아이가 자라서 나만큼의 삶도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를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보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2009년 48.3%에서 2019년 28.9%로 감소했다. 건강보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12년 동안 분만 건수는 감소했지만 그중 저소득층 비중이 뚜렷이 줄어든 반면 상위 30% 이상 고소득층의 비중은 증가했다. 이제 결혼도 출산도 고소득층이 누리기 쉬운 사치품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저출산대책이 청년세대와 여성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을 높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청년의 일자리를 위한 공공투자와 교육을 확충하고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안전망도 강화해야 한다. 흔히들 부의 대물림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난은 대물림조차 되지 않는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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