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증거불충분 무혐의 사건도 학칙 징계 대상"

홍혜진 2021. 4. 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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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혐의 처분사실만으로 '묵시적 동의' 증명 못해"
대법원 [매경DB]
검찰이 대학 내 성범죄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어도, 대학교 학칙에 따른 별도의 징계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민사책임보다 엄격한 증명력을 요구하는 형사책임의 성격을 고려하면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는 이유만으로 민사상 징계사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5일 대법원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서울대생 A씨가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낸 정학 처분 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18년 A씨는 술에 취한 학교 후배 B씨를 모텔로 데려가 잠을 잔 뒤 아침에 성관계를 시도했다. B씨는 A씨가 자신을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했다며 서울대인권센터와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A씨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B씨가 약 다섯시간 잔 뒤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할 정도라면 준유사강간죄의 구성요건인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대인권센터는 A씨의 행위가 자체 규정에 따른 성희롱 또는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정학 12개월 등의 징계를 의결했다. 서울대는 A씨에게 9개월의 정학 처분을 내렸다.

A씨는 "묵시적인 동의 하에 신체접촉을 했을 뿐, B씨의 의사에 반해 신체접촉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며 "징계 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한 정학 처분은 실체상 하자가 있어 무효"라며 서울대를 상대로 정학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B씨가 마신 술의 양과 취한 정도 및 수면 후 세안 및 양치를 한 점 등을 보면 A씨가 신체접촉을 했을 때 어느 정도 술에서 깬 것으로 보인다"며 "술에 취해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던 상태로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2심은 다르게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만취한 상태에서 다섯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서 양치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주취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고, 만취상태에서 잠들었다가 잠깐 깨어나 술에 계속 취한 상태로 다시 잠드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B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무혐의 처분사실만으로 이 사건 징계사유 존부 판단에 필수적인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 재판부는 "원심 판결 이유와 기록 등을 보면 A씨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므로, 징계 사유가 존재한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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