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톡>'노매드랜드' 고단한 유랑의 삶.. 그래도 길은 있더라

김인구 기자 2021. 4.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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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륙 떠도는 노마드 추적

곳곳서 만나고 헤어지며 연대

절망속 따뜻한 시선 잃지 않아

주인공 맥도먼드 연기 압도적

아카데미서 ‘미나리’ 최고 경쟁작

화제작 ‘노매드랜드’가 오는 15일 개봉한다. 이 영화에 관심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미나리’의 강력한 경쟁작이기 때문이다. ‘미나리’와 ‘노매드랜드’는 나란히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메인 부문인 작품상과 감독상에서 정면 대결한다. 지난 2일 시상식 예측전문 사이트인 골드더비에 의하면 작품상에선 ‘노매드랜드’와 ‘미나리’가 1, 2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고, 감독상에선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보다 근소한 우위를 달리고 있다.

‘노매드랜드’는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지금까지 무려 211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해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으로 큰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지난 2월 말 제78회 골든글로브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거머쥐며 ‘미나리’를 위협했다. 경쟁작으로 만났지만 두 영화의 결은 상당히 닮아 보인다. ‘미나리’가 미국 주류사회에서 벗어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뤄 공감을 얻었다면, ‘노매드랜드’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길 위의 사람들인 노마드(Nomad·유목민)의 삶을 추적해 여운을 준다. 한 기업도시가 경제적으로 무너져 해체된 후 그곳이 유일한 생활의 터전이었던 중년여성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아래 사진)은 홀로 밴을 타고 새로운 삶을 찾아 길 위로 떠난다. 광활한 자연, 황량한 사막 속에서 스스로 길 위의 삶을 선택한 노마드들을 만나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된다. 비록 집 없이 떠돌며 기약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파트타임으로 불안정한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때 선택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을 특별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희망을 찾아간다.

영화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동명의 르포르타주(왼쪽)가 원작이다. ‘하퍼스 매거진’ 수록 기사 ‘은퇴의 종말’로 화제를 모았던 브루더는 3년간의 취재와 조사를 더해 차량을 집으로 삼아 유랑하는 노마드의 사연을 담아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타격을 받은 이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변화했는지를 날카롭고 섬세하게 조명했다.

자오 감독은 원작의 건조한 정서를 따라가면서도 미세하게 변주했다. 길 위를 걷는 여행자의 뒷모습에 카메라를 배치해 등장인물과 동일한 시선을 유지하거나 린다 메이, 샬린 스왱키 등 실제 노마드들을 실명으로 출연시킴으로써 따뜻함과 리얼리티를 잃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길 위로 내몰린 노마드의 삶이 장밋빛일 리 없지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호흡하고,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 속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주인공 맥도먼드의 캐스팅과 연기는 거의 압도적이다. ‘파고’(1997)와 ‘쓰리 빌보드’(2017)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번이나 받은 이 배우는 이번에도 명성 이상의 몫을 해냈다. 아무리 60대 중반이라고 해도 여배우이기에 가리고 싶은 구석이 있을 법한데 도무지 숨기는 게 없다. 헝클어진 단발, 깊고 길게 팬 주름, 후줄근한 옷차림의 중성적 이미지가 노마드의 삶을 대변한다. 원작에서 저자인 ‘나’를 대체하는 인물인 맥도먼드는 실제 노마드들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해나가는 주인공으로서, 수많은 노마드의 사연을 들어주는 ‘청자(聽者)’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마도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옛 지인의 딸에게 집 없이 사는 자신의 처지에 관해 설명하면서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말하는 게 노마드의 심정을 표현하는 용어가 아닐까 싶다.

노마드의 이야기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의 붕괴로 나타난 길 위의 노마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혐오, 경제위기가 범람하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오 감독은 “이 이야기의 주제와 정신은 세계 어느 곳, 혹은 삶의 어떤 계층에서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나를 정의하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고 말했다. 러닝타임 108분, 12세 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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