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덮친 임대아파트 한달..'망연자실' 이재민들 한숨만

정성조 2021. 4.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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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늦어져 일상 복귀 하세월..임대주택 비하 서러움까지
벽 무너진 성북구 아파트 화재 현장 [촬영 김동환 수습기자]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핵폭탄이 터진 줄 알았어. 자다가 깼는데 온 건물이 흔들리고 상상도 못 해본 소리가 나더라고."

지난달 6일 오전 7시 46분께,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아파트 6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차 36대와 소방관 142명이 동원돼 2시간 가까이 진압해야 했을 정도로 불은 거셌다.

이 화재로 70대 남성이 숨졌고 주민 9명이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37가구에서 75명의 이재민이 나왔고, 이들 중 16가구는 아직 아파트 내 빈집이나 친척집 등에서 지낸다. 이 임대아파트는 지어진 지 15년가량 됐으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지난달 6일 화재 당시 아파트 [촬영 김지연 수습기자]

임대아파트 '비하'에 가슴앓이…출근 못 해 실직하기도

불이 난 아파트 5층에 살았다는 박명선(80)씨는 임시 거처에 잠시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상으로 복귀는 요원하기만 하다.

박씨는 학생운동을 한 큰아들이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한 뒤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호전됐으나 임시 거처에서 지낸 8일 동안 불안감이 다시 도져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최근 집에서 기자를 만난 그는 "'왜 내게는 불행이 끊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에 잠도 못 이루고 있다. 방에 걸린 큰아들 사진을 보고 말을 건네면서 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집에선 계속 유리 파편이 나오지만 달리 갈 곳도 없다.

또 다른 5층 주민 이영미(53)씨는 중증 장애가 있는 노모와 함께 산다. 사고 당일 임시 거처를 소개받아 간단한 짐만 옮겨왔을 뿐 아직도 경황이 없다.

피아노학원 강사로 일하던 이씨는 사고 수습으로 2주가량 일을 쉬다 결국 직장을 잃었다. 그는 "피해자들이 알아서 피해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근육통이 심해도 병원비 청구 기한이 3월 31일까지였다"고 말했다.

'임대아파트'라는 말은 화재를 겪은 주민들에게 또 다른 상처였다.

불이 난 세대 바로 아래층 주민인 30대 A씨는 "사고 직후 언론보도에서 임대아파트임이 강조돼 직장에 말도 하지 못했다"며 "억지로 출근하는 동안 근육통과 아토피가 생겼는데 하소연하고 도움 청할 곳도 없다는 스트레스로 힘들다"고 했다.

이영미씨도 "사고 후 기사 댓글을 보니 우리를 '임대 거지'라고 부르거나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제에 바라는 게 많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면서 "우리가 복구와 일상을 요구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화재 흔적 남아있는 아파트 [촬영 김동환 수습기자]

화인 조사에 복구는 엄두도 못내…막막함에 발만 동동

불이 시작된 6층 호실과 양옆 세대에는 시꺼멓게 불에 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진화 당시 뿌린 소방수에 집이 젖어 악취와 벌레가 들끓었고, 집과 집을 구분하던 벽은 허물어졌다. 깨진 유리창을 임시로 막아둔 집도 여럿이었다.

복구가 늦어지는 것은 화재원인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 소방당국은 당초 가스 폭발로 추정했지만 정확한 경위를 밝히고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현장 잔해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이 끝나려면 2∼3주가량 더 걸릴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주민은 더뎌지는 복구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불에 탄 6층을 둘러보던 주민 B씨는 "답답하기도 하고 다시 들어와 살아야 할 집이라 복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보고 있다"며 "이곳은 노인이나 독거 가구가 많은데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 관계자는 5일 "피해 세대 이주와 현황 파악은 마쳤다"며 "최근 주민설명회를 열어 피해 보상 방안을 알렸고, 트라우마 등으로 불안한 분들은 주거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복구 완료 시점에 대해선 "화재원인 조사가 끝나야 해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구청 등을 통해 후원금과 이불·라면·김치 등 지역사회의 구호 물품이 답지하지만, 이재민들의 생활은 쉽지 않다. 가전제품을 거의 챙겨 나오지 못한 터라 여러 가구가 세탁기 하나를 함께 쓰기도 한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막막해진 생활도 문제다. 한 주민은 "십시일반 모금으로 가구당 수십만원씩 지원이 돼 온정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장 병원비 등 지출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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