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갈팡질팡 의결권 행사 논란..경영참여 아닌 간섭 우려

강은성 기자 2021. 4. 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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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중대 의사결정에 '전문성·독립성' 없이 진영논리로 결정
연금사회주의 우려 커질 수 있어.."차라리 FI로 남자" 의견도
권덕철 보건복지부장관(오른쪽)이 지난 3월26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3차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 장관 뒤로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금운용본부 및 국민연금 의사결정구조를 규탄하며 피켓 농성을 하고 있다. 2021.3.2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올해 상장기업 정기 주주총회가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주요 상장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 의결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고 기준조차 모호해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4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책임투자'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래 의결권 행사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공개한 '수탁자 책임활동 내역'에 따르면 기금은 지난 2018년 총 768회의 주주총회에서 2864건의 의결권을 행사했고 2019년엔 767건의 주주총회에서 3278건, 2020년에는 854건의 주주총회에서 3397건을 각각 행사했다.

올해에는 총 327건의 임시 및 정기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대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굵직한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이 의결권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잦았다.

◇의결권 찬성vs반대…기준은? '그때그때 달라요'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와 조원태 회장 재선임을 잇따라 반대했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주가가 하락해 기존 주주들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고, 조원태 회장은 아시아나 인수를 위한 실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아 감시의무를 소홀했다며 재선임을 반대했다.

대한항공의 사례만 보면 국민연금이 현직 경영진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공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구 ISS가 '반대' 의견을 내 관심을 모았었지만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위원회(수탁위)의 안건 회부 요청조차 무시하고 '찬성' 의결권 행사를 단독으로 결정해 '수탁위 패싱 논란'을 유발했다.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캐스팅 보트' 역할로 관심을 모았던 금호석유화학과 한국타이어에서도 국민연금은 현직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수탁위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과 한국타이어의 경우, 현 경영진은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보이고 있어 경영진 교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상대측 주주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경영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찬성이유를 설명했다.

참연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이 26일 오후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앞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패싱한 기금운용본부 및 국민연금 의사결정구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3.2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전문성 확보 못하면 경영 참여 아닌 '간섭'될 수도

주요 주총 안건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국민연금이지만, 그 기준에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 내외부의 평가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기준없이 남발되면 이는 민간 기업에 대한 '간섭'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관계자는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에 국민연금이 대주주로서 책임 투자를 위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그만큼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올 들어 논란이 된 의결권 결정방향을 보면 '명확하고 일관된' 판단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감시를 소홀했다고 명확하게 지적을 받은 사외이사 재선임은 수탁위까지 패싱하면서 찬성의견을 던지고, 이에 대해 시민단체 등이 격렬하게 반발하자 대한항공 유상증자와 사내이사 재선임은 모두 반대하는 등 의결권 행사에 명확한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기금운용위원회도 최근 회의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삼성전자 사외이사 재선임 찬성 의결 결정 과정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의결권에 대해 심의하는 수탁위의 경우 기업 추천과 근로자 추천, 지역가입자 추천 등 기계적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탁위 의사결정 방향이 '진영논리'로 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이렇게 되면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흐를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수탁위와 기금위의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가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면 이익단체나 정치권 등의 목소리에 흔들리면서 기업의 경쟁력과는 관계없는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면서 "책임투자를 제대로 이행하려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던가, 아니면 섣부르게 기업 경영에 간섭하지 말고 철저하게 재무적투자자(FI)로 남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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