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룰 변경·ESG강화에 역대급 주주제안.."주주 목소리 커졌다"

김윤지 2021. 4. 5.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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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커진 주주]
상법 개정 등 주주제안 127건 쏟아져
가결 8건 중 3건, 대주주 제한 '3%룰' 효과
의결권 자문사 입지도 함께 강화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12월 결산 상장법인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된 가운데 이번 주주총회에서 역대 최다 주주 제안이 쏟아졌다.

올해도 국민연금은 별도로 주주 제안에 나서지 않았지만, 주주권 행사에 대한 인식 제고와 지난해 12월 공정경제 3법 가결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 등으로 일반 주주까지 적극 나서면서 최다를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가결까지 이어진 주주 제안은 8건(6.3%)에 그쳤지만, 이중 한국앤컴퍼니(000240)와 한국아트라스비엑스(023890)의 주주 제안 가결은 의미있는 성과라는 평가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SG 관심도 ↑…급증한 주주 제안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정기 주주총회 주주총회소집공고를 공시한 12월결산 상장사들의 주주 제안은 127건에 달한다. 유가가 47건(16곳), 코스닥이 80건(15곳)이다.

지난 2016년 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 주주 제안은 늘어나는 추세다. 유가·코스닥 상장사를 합쳐 2019년에는 114건, 2020년에는 113건이 상정됐다. 지난해 다소 주춤한 것은 코로나19로 시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은 시기와 주주총회 시즌이 겹친 탓이었다. 하지만 최근 강화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움직임과 지난해 상법 개정, 일부 상장사의 경영권 분쟁 등으로 올해 다시 급증했다.

특히 올해 주주총회에선 지난해 상법 개정에 따라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적어도 1명 이상,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규정(감사위원 분리선출)이 적용돼 ‘관전 포인트’로 꼽혔다.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것으로,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단계에서부터 각 주주의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는 규정(3%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소수 주주가 지지하는 후보도 선임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127건의 주주 제안 중 18건(14.17%·10개사)이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는 ‘이사 선임의 건’(55건, 43.31%), ‘정관 변경의 건’(23건, 18.11%)에 이어 안건 중 세 번째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앤컴퍼니·아트라스비엑스, “땡큐 3%룰”

주주 제안 급증에도 실제 가결된 안건은 8건(5곳)이었다. 전체 제안 중 6.3%만 통과된 것이다. 이중 3건은 ‘3%룰’ 수혜를 누렸다. 지난달 30일 한국앤컴퍼니 정기 주주총회에선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분리 선출하는 사외이사 자리에는 조현식 부회장 쪽이 추천한 이한상 고려대 교수가 선임됐다. 지분 구조에선 조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조현범 사장이 43.52%(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 기준)로 압도적이나 ‘3%룰’로 제한됐다. 덕분에 지분이 약 20% 수준인 소수 주주들의 지지를 받은 조 부회장의 안건이 힘을 얻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사장(왼쪽)과 조현식 부회장.
한국아트라스비엑스와 수년째 주주 환원 정책을 두고 갈등 중인 1세대 행동주의 펀드 운용사인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달 31일 드디어 ‘승리’를 거뒀다. 밸류파트너스운용은 앞서 여러 차례 사외이사로 추천했던 문봉진 다산회계법인 전무이사를 올해도 주총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대주주 지분을 제한하는 ‘3%룰’ 덕분에 주주총회에서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한국아트라스비엑스가 한국앤컴퍼니에 다음날 흡수합병 되면서 이사회에서 역할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밖에도 대한방직도 소액 주주가 내놓은 주주 제안 중 ‘비상근 감사 선임의 건’이 가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3%룰’이 있었다.

주주 제안 116건 중 7건이 가결된 지난해와 대동소이한 수준이지만, 상법 개정 이후 한국앤컴퍼니와 한국아트라스비엑스와 같은 첫 ‘성공 사례’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강동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사무국장은 “주주 제안을 통해 대주주의 영향을 덜 받는 인사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포함된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라면서 “적극적인 주주 관여로 기업 가치 제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화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도 한진칼 주총에서 우호 주주로 해석되는 산업은행의 제안들이 통과됐고, 크리스에프앤씨(110790)도 사실상 이사회 제안과 큰 차이가 없는 주주제안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 가결됐다. 그 외는 대부분 표결에 따른 부결 혹은 주총 전 철회, 의안 미상정, 소송 결과에 따른 자동 폐기 등으로 가결이란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의결권 자문사 “보고서 요청 급증”

이처럼 주주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결권 자문사의 입김도 거세지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는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한 뒤 찬성·반대를 제시하는 민간 회사다. 이들의 권고에 따라 기관 투자자들의 표심도 움직일 수 있어 기업들도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기업지배구조원·대신지배구조연구소·서스틴베스트·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 외국계인 ISS·글래스루이스 등이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큰 손인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활동에 따라 국민연금의 자금을 위탁받는 기관들은 당연히 이에 따를 수밖에 없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의결권 자문사에 분석 보고서를 요청하는 기관 투자자들이 늘어났고, 기업 또한 대응 차원에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분석했는지 알기 위한 목적으로 구매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들은 여전히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3%룰’ 등의 제도가 외국계 투기자본 같은 기관투자자를 위한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올해는 개정 규정이 적용된 첫해인 만큼 비교적 무난하게 넘어갔지만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내년에는 헤지펀드 등에서 이를 악용할 수 있다”면서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방안들도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김윤지 (jay3@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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