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만든다고, 낙엽 많다고..아낌없이 베어버린 학교 나무
“가지 칠 때 보면 교장 선생님들이 음주 단속하는 경찰관 같아요. 밑에서 ‘더 더 더…’라고 하시거든요. 나무가 반 토막이 나야 ‘아이고 시원하다’ 합니다. 어딜 가나 매번 그래요.”(곰솔조경 박정기 대표)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학교 나무들이 매년 봄 무분별한 가지치기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무나 조경에 이해가 부족한 학교 관리자들이 수십년 된 나무를 두목치기(절두목·나무 기둥 윗부분을 모두 베어버리기)하거나 아예 베어버리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나무 관리 지침 자체가 없을뿐더러, 학교·교육청에 전문지식을 갖춘 조경직도 전혀 없어 공공 영역의 나무 가운데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학교들은 농약(소독약)은 물론 제초제까지 뿌리고 있어 학생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60년 향나무 벤 게 자랑이라는 교장선생님 2017년부터 지금까지 광주·전남 지역에서 학교(명상)숲 선정위원으로 활동해온 김세진 전 ‘(사)광주생명의숲’ 사무처장은 “교장·행정실장 등 학교 관리자들이 나무에 대한 인식이 아주 잘못돼 있다. 나무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들 주차장 만든다’, ‘낙엽이 많이 떨어진다’, ‘학교 건물을 가린다’고, 심지어 ‘나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마구 베거나 서슴지 않고 두목치기를 한다는 것이다.
전남 여수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숲 선정을 위해 방문한 김 전 처장에게 일제 잔재라며 60여년 전에 기념으로 심었던, 일본이 원산지인 큰 향나무를 베어낸 일을 업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전 처장은 “이 향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인 건 맞지만 60살 나무를 다시 보려면 60년이 걸린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산림청에서 학교숲을 조성한 지 20년이 됐는데, 초기에 선정된 학교들에 가보면 오래된 나무가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문성도 없이 평균 2년마다 바뀌는 교장 선생님들이 나무를 벨지 말지를 쉽게 결정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9년 시작한 학교숲 조성 사업으로 2019년까지 1770개 학교에 학교숲이 조성됐다. 대상으로 선정되면 중앙·지방정부에서 6천만원을 지원받는다.
■ 나무 관리, 규정도 없이 ‘비전문가’ 교장 재량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만한 나무 관리 규정은 없다. 경남도 등 시·도 10곳은 ‘학교 숲 조성·관리 조례’를 제정해 나무를 벨 때 운영위 심의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가지치기·소독작업 등 다른 모든 나무 관리 업무는 여전히 학교장이 재량껏 할 수 있다. 더욱이 나무의 수종에 따른 생리적 특성이나 학교 공간에 맞는 수형 관리를 할 수 있는 조경전문직이 학교는 물론, 상급기관인 교육청에도 없다.
김동필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학교장이 나무를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 하고, 5∼10개 학교당 한 개 조경팀만 둬도 이런 처참한 나무 훼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100년이 넘은 학교가 수십곳에 이르지만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는 한 100년이 넘는 나무가 남아 있는 학교는 드물다”며 “학교에 조성된 숲은 인성교육, 자연환경교육을 위한 기반이고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훌륭한 국가자원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수 경남도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연구사는 “‘전봇대 문화’(학교 나무를 전봇대처럼 자르는 일)는 없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생태에 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산림청·조경학회가 전문적인 수목 관리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이를 위해 산림 관련 법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소독약에 제초제까지 쓰기도 한편, 비전문가에게 맡긴 학교 나무 관리는 학생들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체나 교육계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쉬는 날 조경업체 등을 불러 소독약(농약)을 뿌리거나 잡초를 제거하려고 제초제까지 뿌리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박정기 대표는 “기후변화 탓에 해충도 늘어 농약도 자주 뿌리고 운동장엔 제초제도 뿌린다.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소독약·제초제 살포 사실이나 위험성에 관해 제대로 알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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