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전쟁 같던 골프가 너무 좋아졌어요"

16세 때 KLPGA 선수권 우승
2014년 은퇴 후 해설·레슨 활동
7년 만에 최고령 선수로 복귀
"걸을 수 있으면 할 수 있겠죠"

[경향신문]

7년 만에 필드에 복귀하는 배경은이 2021시즌 개막을 앞두고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서 활짝 웃고 있다. KLPGA 제공

“골프가 좋아졌어요. 되게 좋아졌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배경은(36·세티9)이다. 2000년 15세에 프로 데뷔해서 16세 때 KLPGA 선수권대회서 우승하며 최연소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을 세웠던 그는 2014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방송의 코스 해설과 레슨 프로그램 등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필드로 돌아왔다. ‘최연소’ 대신 투어 ‘최고령’ 수식어와 함께.

배경은은 “이제야 비로소 골프를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임재범이 노래한 ‘전쟁 같은 사랑’이었다면 지금은 깊고 넓게 보면서 즐길 줄 아는 사랑이다. 은퇴 후 선수들의 플레이를 해설하면서, 또 레슨을 하면서 골프에 대한 안목이 깊어졌다는 애기다.

배경은은 “예전에는 골프가 전쟁이고 어떻게 보면 생존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골프가 참 좋아졌다.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도 눈에 들어오더라”면서 “이런 마음으로 새롭게 해보고 싶었다. ‘걸을 수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KLPGA 정규투어 시드 순위전에 출전했다. 레슨이 많아서 따로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필드 감각과 야디지북 하나만 믿고 무작정 도전했다. 4언더파를 쳐 예선을 통과한 뒤 본선 3라운드서 1오버파를 쳐 31위로 2021시즌 시드를 따냈다.

“그냥 파를 위한 골프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파를 위한 골프는 어렵지 않거든요.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가서 됐나봐요.”

36세의 나이에 현역으로 돌아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이어트용으로 하던 훈련 강도를 선수용으로 올리다 보니 온몸에 근육통을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끊어 놓은 쿠폰이 소진될 때까지 레슨도 병행해야 해 더욱 힘들었다. 배경은은 “체력훈련을 많이 해서 지금은 ‘근육돼지’가 됐다”면서도 “잘 칠 자신은 있는데 18홀을 걸을 자신은 없다”며 엄살이다.

골프가 좋아서 돌아온 필드지만 즐기기만 할 생각은 없다. 우승과 함께 매 라운드 3언더파를 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KLPGA 투어서 통산 3승을 올린 배경은은 2005년 신세계배 제23회 KLPGA 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게 마지막 우승이었다. 만약 배경은이 4월 말 이후에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하면 전미정이 갖고 있는 15년6개월24일(5687일)의 ‘역대 우승 간 최장기간’ 기록도 갈아치울 수 있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