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표면에 '돛대형 전지판' 세운다

이정호 기자 2021. 4. 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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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림자로 태양광 못 받는 운석 충돌구 안쪽, 탐사선 활동 제약
전지판 높이 9.7m까지 길어져 지형 관계없이 ‘전기 생산’ 가능
NASA, 민간기업 5곳과 협력…10년 뒤 달의 남극에서 시험
최고 9.7m까지 키를 높일 수 있는 태양 전지판의 상상도. 그림자를 피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이 장비를 미국은 2020년대 말까지 달 남극에서 시험 가동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2019년 개봉한 미국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기존 공상과학(SF)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장면을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영화를 끌고 나가는 힘은 주인공인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 소령이 우주 영웅으로 믿었던 아버지의 실체를 캐내면서 느끼는 내면적인 갈등에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경험할 법한 현실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다. 그런 장면 가운데 하나가 달 표면에서 월면차로 주행 중이던 주인공 일행이 해적 무리를 만나 벌이는 추격전이다.

맥브라이드 소령은 수적으로 열세에 몰리자 주변 지형과 건축물을 이용해 대항하려 한다. 이때 눈에 띈 것이 바로 달 표면에 지어진 대규모 태양광 단지였다. 속도가 지나치게 붙은 해적 무리의 월면차는 맥브라이드 소령의 노련한 운전 솜씨에 당해 태양광 단지로 돌진하며 대파된다. 달에 우주선 터미널까지 건설된 최소 수십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도 전기는 태양 전지판을 지표면에 깔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되는 셈이다. 실제로도 화석연료는 물론 바람과 액체 상태의 물도 없는 달에서 전기를 일으키기에 가장 편리한 자원은 태양광이다.

■ 아파트 3층 높이까지 ‘점프’

그런데 이런 태양 전지판의 활용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기술이 미국에서 개발에 들어갔다. 지난달 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돛대에 깃발을 올리듯 하늘 방향으로 키를 키우는 태양 전지판을 고안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외계 천체의 땅에 늘어놓거나 탐사선의 동체에 붙이기 마련인 태양 전지판의 높이를 필요에 따라 바꾸는 것이다.

NASA가 이런 기술을 만들기로 한 건 달의 지형 때문이다. 수많은 언덕 기슭, 그리고 구덩이처럼 파인 운석 충돌구의 안쪽에선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생기는데, 여기선 태양광을 받을 수 없어 전기 생산도 불가능하다. 전기를 만들 수 없으면 기지든 로봇이든 월면차든 운영이 멈춘다. NASA가 계획한 태양 전지판의 최고 상승 높이는 아파트 3층에 해당하는 9.7m다. 이렇게 솟구친 태양 전지판은 지상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피해 월면 어디서나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NASA가 이런 ‘돛대형 태양 전지판’을 만들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르테미스 계획’ 때문이다. 1960년대에 추진된 아폴로 계획은 미국과 소련 간 체제 경쟁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달에 누가 처음 도착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2020년대의 아르테미스 계획은 자원 탐사와 우주기지 건설이 핵심이기 때문에 달에 인간이 얼마나 오래 머무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중단 없는 전기 생산이 필수인 것이다. 원자력 전지가 일부 활용될 수도 있지만, 끊기지 않는 자원인 태양광을 지형에 구애받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NASA는 내린 것이다.

■ 그림자 드리워도 ‘우주 미아’ 걱정 뚝

키가 커지는 태양 전지판이 특히 필요한 곳은 달의 남극이다. 식수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얼음이 있을 것으로 추정돼 꼭 개척해야 하는 달의 남극에선 태양이 지평선 근처에 머문다. 게다가 구덩이가 집중돼 있어 넓고 짙은 그림자가 생기기에 좋은 환경이다. 구덩이 아래에 형성된 그림자에 월면차를 몰고 섣불리 들어갔다가 전력이 바닥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우주 미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 높은 위치까지 태양 전지판을 상승시켜 햇빛과 접촉할 수 있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게 NASA의 생각이다. NASA는 이 기술을 만들기 위해 록히드마틴 등 5개 민간기업과 협력할 예정이다. 앞으로 다양한 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한 개 시스템을 선정해 약 10년 뒤 달의 남극에서 시험 가동을 한다. NASA는 가파른 지형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날카롭고 거친 달의 먼지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니며 질량과 부피가 최소화된 태양 전지판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척 테일러 NASA 랭글리연구센터 박사는 “이번 기술은 아르테미스 계획을 실현하고 운영하기 위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얻는 데 중요하다”며 “바위투성이의 그늘진 지역에서 장비들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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