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부동산 재·보선'

곽희양 기자 2021. 4. 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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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간 부동산 대책 쏟아낸 여당, 정권심판 공세만 집중한 야당
네거티브까지 부동산 이슈..돌봄·복지·코로나 등 '삶의 질' 논의 실종
LH 사태는 '분노 방아쇠'일 뿐, 이면엔 "공정·정의 향한 열망" 해석도

[경향신문]

부활절에 교회 찾은 박영선·오세훈…‘거리 두기 예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사흘 앞둔 4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오른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왼쪽)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서초구갑)을 사이에 두고 앉아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4·7 서울·부산 시장 보궐 선거는 ‘부동산’에 갇힌 모습이다. 부동산 이슈에 밀려 노동·복지·돌봄 등의 이슈는 설 자리를 잃었다. 여당은 최근 한 달 새 ‘부동산 분노’를 달래려 대책을 쏟아냈고, 야당은 ‘부동산 분노’를 정권심판론과 연결하는 데만 급급했다. 여야 후보의 네거티브마저 부동산이 이슈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기점으로 한 부동산 문제는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만 했을 뿐, 누적돼온 ‘배신당한 공정·정의에 대한 열망’이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정의라는 상징적 가치를 누가 획득하느냐가 이번 선거는 물론 내년 대선에서도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는 부동산에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일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이후 부동산 관련 입법을 잇따라 추진했다. LH 투기 관련 합동특별수사본부 구성, 공공주택법 등 LH 3법 통과, 투기 이익 소급몰수 법안 추진 등을 쏟아냈다. 대출 규제 완화도 꺼내들었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9억원 이하 주택 공시지가 인상률 10% 이내 제한’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거리 두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 등은 부동산과 관련해 ‘반성문’도 내놨다.

국민의힘은 시종일관 부동산 문제를 공격했다. 빠르게 재개발 등을 시행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부동산 개발 민심을 자극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강남에 집 한 채 있는 사람이 나라의 죄인이냐”며 여당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했고,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25번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드러난 것이 LH 사건”이라며 부동산 이슈에 집중했다.

부동산에 갇힌 선거전은 네거티브마저도 ‘오 후보의 내곡동 땅’ ‘박 후보의 도쿄 아파트’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의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전셋값 인상 논란’ 등 부동산 이슈가 중심이었다.

부동산이 모든 이슈를 삼킨 표면적인 배경에는 ‘평생을 노력해도 내 집 장만을 못한다’는 무주택자의 절망감과 유주택자의 부동산 세금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북지역에선 민주당 지지가 높고, 강남지역에선 국민의힘 지지가 높다는 통상적 관념도 이번 선거에서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오 후보가 서울 전 지역에서 박 후보에게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17개 자치구에서 패배하고도 ‘강남 몰표’로 승리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특히 ‘부동산 분노’의 바닥에는 문 정부가 내세운 ‘공정·정의’라는 가치에 대한 배신감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 특혜 의혹, ‘윤석열 쫓아내기’에 집중한 검찰개혁, 여권 고위인사의 ‘다주택’ 논란 등으로 불거진 ‘불공정’ 이슈가 LH 사태를 계기로 임계점을 넘기고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임대차 보호 3법 통과 전 ‘임대료 인상’ 논란도 분노의 불길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 정부의 정책 실력과 ‘내로남불’식 행태에 대한 배신감이 근원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민주화 세력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것이 배경”이라고 했고, 홍형식 한길리서치소장은 “부동산 분노는 정부 정책 능력에 대한 불신을 대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다 보니 복지·돌봄·젠더·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지원 등 삶의 질에 관한 다양한 분야는 아예 논의에서 배제됐다. 두 후보 모두 부동산 공약에 치중하느라 노동 공약은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 후보는 ‘유치원 무상급식’ ‘취약계층 노인 무상점심’ 등 보편복지 공약을, 오 후보는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안심소득’을 지원하겠다는 선별복지 공약을 내놨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후보들 토론회에서도 논쟁이 되지 못했다. 젠더 이슈는 주로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됐고, 소수자 이슈는 본선 경쟁에서 자취를 감췄다. 두 후보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꺼냈지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 등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책 공약 검증이라는 선거의 기본적인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며 “부동산 이외의 정책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도 생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인물과 정책에 대한 검증 없이 ‘읍소론’과 ‘내로남불 심판론’만 남은 전형적인 정치선거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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