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보복소비

차준철 논설위원 2021. 4. 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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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일 관련 이미지/경향신문 자료사진

2023년 1월 출발, 7월 도착하는 180일간의 세계일주. 태평양을 건너 인도양을 거쳐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5개 대륙을 지나는 크루즈 여행이다. 1인당 가격이 최소 5000만원대이고, 가장 비싼 티켓은 1억8000만원에 이른다. 올 초 미국에서 이런 여행 상품이 나왔는데 하루 만에 684명 정원을 가뿐히 채우며 매진됐다. 2022년, 2023년에 5개월간 항해하는 또 다른 450인승 크루즈의 커플당 50만달러(약 5억6000만원)짜리 스위트룸도 이미 동났다고 한다. 지난 1년여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처럼 외부 요인 탓에 억제됐던 소비가 보복하듯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가리켜 보복소비라 한다. 감염병 재난 국면에서 꾹 참아왔던 소비 욕구를 풀면서 사람들은 생필품보다는 사치품이나 기호품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 그동안 놓쳤던 기회에 대한 갈망과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당장 쓰고 싶은 대로 쓰기’를 삶의 우선순위로 삼게 된 것이다. 지난해 4월 중국에서 봉쇄가 해제된 직후 광저우의 한 명품 매장이 북새통을 이루며 역대 하루 최다 매출인 33억원을 올린 게 단적인 사례다.

보복소비의 바탕에는 코로나19 상황 호전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과 맞물려 보복소비가 본격화하고 있다. 세일을 앞당긴 백화점마다 손님이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지난해는 물론 2019년 매출까지 앞질렀다. 명품 매장에 수백명의 손님이 새벽부터 기다리다 문을 열자마자 달려나가는 ‘오픈런’도 흔한 일이 됐다. 제주 등 유명 관광지의 고급 호텔·리조트 예약이 꽉 찼다. 비싼 방일수록 예약이 어렵다고 한다. 면세품 쇼핑을 한 보따리씩 할 수 있는 무착륙 관광비행도 인기다.

그간 못 쓴 내 돈을 내 맘대로 쓴다는데 누가 뭐라 할까. 보복소비는 실제 경기 회복을 앞당길 수도 있다. 혹자는 코로나19 스트레스 치료 비용보다 적게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복소비는 소수만 누릴 수 있다. 하루하루 버티며 일상 회복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많다. 빈익빈 부익부를 낳는 보복소비는 지양해야 옳다. 보복소비하느라 한데 몰려 방역수칙을 어기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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