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한 가지에 미쳤던 18세기 조선의 천재들

박영서 2021. 4. 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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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새 경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18세기 조선에선 이런 사람들을 '벽광나치오'(癖狂懶痴傲)로 불렀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진정한 문화 리더 '벽광나치오'를 소개한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11명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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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광나치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새 경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들을 프로페셔널, 마니아, 또는 오타쿠라고 부른다. 18세기 조선에선 이런 사람들을 '벽광나치오'(癖狂懶痴傲)로 불렀다. 벽(癖·고질병자), 광(狂·미치광이), 나(懶·게으름뱅이), 치(痴·바보), 오(傲·오만한 자)라는 표현이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진정한 문화 리더 '벽광나치오'를 소개한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11명의 이야기다. 이들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어 그 면면을 살핀다.

정철조(鄭喆祚)는 '르네상스적 인물'이었다. 문과에 급제한 관리 출신이지만 100가지 기술을 몸에 지녔다고 한다. 일찍 관직을 떠난 그는 과학, 기술, 천문, 수학, 예술에 능했다. 천문기계와 농기구, 지도까지 직접 만들었고 특히 벼루 돌의 최고 전문가였다. 그는 '석치'(石癡·돌에 미친 바보)라는 호까지 얻었다. 선비 정란(鄭瀾)은 전문 산악인이었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을 모두 올랐다. 사람들은 산을 쏘다니는 그를 '광사'(狂士·미친 선비)라고 불렀다. 전남 보성 출신의 평민 정운창(鄭運昌)은 바둑 명인이었다. 바둑을 향한 그의 집념은 놀라웠다. 사촌형으로부터 바둑을 배우며 5~6년 동안 문밖 출입을 하지않았다. 바둑 외의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고 한다.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은 검무(劒舞)에 있어 조선 최고였다. 박제가가 묘향산의 한 사찰에서 운심의 검무를 관람하고는'검무기'라는 글까지 남길 정도였다. 화가 최북(崔北)은 권력이 싫어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른 조선의 '반 고흐'였고, 이덕무(李德懋)는 눈병에 걸리자 실눈으로 책을 읽었던 '간서치'(刊書痴·책만 읽는 바보)였다.

이들은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 남들의 눈치 보지 않았고, 주어진 신분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주도적으로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다. 이를 통해 18세기 조선을 다채롭고 건실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수백 년 후 세상은 바뀌었다. 타인과의 차별성이 최고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 오늘날 창조적 인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나침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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